아, 이 문장?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라는 영화가 가르쳐 주더라고.
배낭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했지? 유럽 같은 데로. 이 영화 한 번 봐봐. 도전하고 싶어질 거야. 유럽 곳곳 ‘도장깨기’ 하고 싶어질 거야. 오빠는 그랬거든.
배낭여행. 오빠도 하고 싶은데. 배낭만 메고 발이 내키는 대로 가보고 싶은데. 시도를 못 하겠더라고. 아마도 20대엔 어려울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라고 코로나 핑계를 대고 싶긴 하지만 사실은 아니지. 겁이 나니까.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해외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겠어. 막무가내로 여행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하겠어. 괜히 두려우니까. 아. 오빠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싶은가 보다. 우물 안은 그래도 편하니까. ‘우물 밖은 위험해!’ 독수리나 송골매나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면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건 영화라 그런가? 흥미진진했어. 설레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라 그런지. 생생해.
네 명의 대학생이 대학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해. 대학에서 학점 받고 취업 준비해서 취업하고. 그러한 일상이 너무 지겨울 것 같다면서 뭔가 색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대. 그래서 해외에서 일 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어서 오기 등을 목표로 삼고 무작정 해외로 나갔어. 숙박이나 이런 부분은 호스텔에다 영상을 찍어주는 대가로 도움받기로 하고. 호스텔 홍보영상 같은 것을 찍어주더라고.
그렇게 “땡전 한 푼 없이 유럽 여행”은 시작돼.
근데.
생각했던 데로 풀리지 않아. 인생이 다 그런가 봐. 그들은 잠도 편안히 못 자. 잘 데가 없거든. 거리에서 잠을 청해. 감기를 걸리는 분도 있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돈은 없고. 반 노숙자 같은 삶을 살아가. 아니, 노숙자보다도 더 힘들지 몰라. 그들에겐 밥을 줄 복지단체도 없거든.
그들의 계획을 듣고 여행에 동참한 분들이 있어. 아는 형 두 명과 누나 한 명이었지. 그분들은 회사도 그만두고 같이 했는데, 도중에 집으로 가고 말았어. 생각했던 데로 풀리지 않고 매일 거리에서 자다 보니까. 아무래도 본래 계획을 세웠던 대학생 네 분은 아쉬울 게 없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던 그분들에겐 이로울 게 없었으니까. 거리에서 노숙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
오빠는, 남은 대학생 네 분을 보면서 그건 다 예고된 시련이었다고 생각했어. 오빠는 무슨 일이든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파’라서. 미리 목적지까지 갈 지도나, 방편 등을 준비하고 그 방법이 틀어졌을 때 쓸 제2의 방법까지 마련해놓으니까. 그런데 대학생 네 분은 아니었지. 무작정 출발했어. 그런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버스비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타지에서 객사하면 큰일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리 무모한 길을 걸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지.
근데, 영화가 끝났을 때 즈음. 오빠는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진 않다는 것을 알았어.
이 영화는 그래서, 좋았어. 요즘 청년이나, 사회에서는 정해진 방법, 안전한 길만 추구하려고 하잖아. 그래야 행복하다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쌓고, 탄탄대로를 약속받은 직종을 찾으면서.
이 영화 속에선, 그게 아니야. 그들은 ‘확률’을 무시해. 계산하지 않고 행동해. 그럼 나나, 다른 사람들 말처럼 실패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야. 마치 ‘실패’를 모르는 것처럼. 그들은 나아가. 그리고 마침내 성공해.
히치하이킹이라고 알아? ‘나무위키’에서는 ‘Hitchhiking. 여행 중이나 긴급 시에,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의 차량이나 운송수단을 목적지, 또는 도중까지 얻어 타는 것.’을 히치하이킹이라 하더라고.
대학생 네 분은 돈이 없었어. 뭘 타고 갈 ‘형편’이 아니었지. 그렇다고 망망대해 같은 거리를 걸어갈 수는 없잖아. 오빠 기억이 맞는다면 1000km는 족히 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처음엔 어색했는지, 되게 힘들어해. 영화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나와. 집에서 컴퓨터로 보는 나도 부끄럽더라고. 차들이 그냥 쌩- 지나가는데. 나도 덩달아 마음이 썰-렁 해지더라고.
오빠 같으면 100번을 해도 못 했을 텐데. 그들은 마침내 성공해. 어떻게 저런 용기가 날까. 멋있더라고. 한편으론 부럽고. 저렇게 자신감 있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다니. 춤을 추고. 별의별 자세를 다 취하고. 재미있는 건 영화가 끝날 때 즈음 그들은 히치하이킹 고수가 돼 있다는 거야.
생각을 해봤어. 젊음에 패기가 없다면 어떨까. 그들이 자신감 없이 흐물흐물한 자세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빠는 이 영화를 바로 끄지 않았을까. 보는 내내 답답하진 않았을까.
‘청춘’이란 단어는, 정해진 시기나 나이로부터 빚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 청춘이란, 용기 내 도전해야 피어오르는 단어였지.
오빠는 지금껏 많은 부분에서 용기를 보이지 않았어. 여행도 여행이지만, 자격증이든, 일이든, 오빤 못 할 것 같다거나, 어차피 실패할 거란 생각에 시도조차 안 했어. 그때는 그게 ‘편했’던 것 같아. 실패해서 상처 안 받고. 탈락해서 스트레스 안 받고.
근데 가끔은 말이지. 그런 오빠가 못 마땅해. 시도라도 해볼 걸. 노력이라도 해볼 걸.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안 될 것 같다고 지레 겁먹고 물러나는 거. 그렇게 미련을 남기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미련을 남길 바엔 도전하라고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던 게 아닐까. 천 리 길도 사실은 한 발자국부터 시작인데. 천 리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고. 어차피 난 가다가 포기할 거라고. 출발해서 뭐하겠냐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냐고. 애써 못 미더운 용기만 나무랐던 게 아닐까.
생각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