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는 바다수영을 꼭 하고 싶었다. 사람 없는 바다를 찾다가 시골에 있는 해수욕장을 가고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 오는 걸로 1박 2일 여행이 뚝딱 정해졌다. 해수욕장은 한적했고 혼자여서 흥은 덜 낫지만 최선을 다해 헤엄쳤다. 마음은 두세 시간 노는 거였는데 현실의 체력은 따라주지 않았다.한 시간 정도 어설픈 바다 수영을 하고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댁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지만 아무도 없는 시골집은 고요했고 적막했다. 먼지 쌓인 바닥을 대강 치우고 지친 몸을 뉘어 잠시 쉬었다. 시골집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편의점이 생긴 것도 낯설기만 한데, 시골집으로 배달이라니. 더 이상 시골은 시골이 아니다.그래도 여전히 이곳, 할아버지댁은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가 지지도 않은 저녁, 조용한 시골집에서 배달음식과 가족 여행을 축하하는 소주를 한 잔, 두 잔 하다가 문득 "아빠, 아빠도 할머니랑 할아버지 보고 싶어?" 물었다.아직 시골집 안의 공기에는 할아버지가 묻어있었다.아버지는 "당연하지. 그러니까 논이고 집이고 안 팔고 있지. 할머니, 할아버지 고생한 게 묻어있는데"하고 대답하셨다. 대답을 들으면서도 내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던가 하며 놀랐다.여태까지 아버지라는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아버지의 이야기나 감정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녀올게요. 다녀왔어요. 하는 인사와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공유하는 건 그저 일상이었다.그래서 청년일 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니다. 아버지도 청년이었다는 것을 잊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물음은 이렇게 이어졌다.
"아빠, 결혼은 언제 했어?"
"스물일곱인가 여덟인가에 했지."
스물일곱인지, 스물여덟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다. 아버지의 나이에 언니의 나이를 빼보니 지금 내 나이였다. 27. 물론 지금 내 주변에도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결혼은 어른이 하는 일이라고,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어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에 결혼을 했었다니. 예전에 언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그때에는 스물일곱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 흘려 넘겼을 것이다. 그러다 올해, 내 나이27에 다시 듣게 되니 정말 놀랐다.물론 옛날이랑 지금이랑은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27살이면 정말 애기 때인데.... 생각이번졌고 미안함은 늘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애정표현도 많이 하고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저녁도 같이 해 먹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아직 부족하구나 싶다. 어쩌면 철이 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물어봐야겠다. 결혼하기 전 아버지는 어떻게 지냈는지, 시골에서 부산으로 언제 터를 잡게 되었는지, 결혼할 때는 무슨 기분이었는지, 언니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지. 틈나는 대로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아빠와 나의 사이를 채워야겠다. 좀 더 빨리 물어볼걸, 깨달을 걸. 조급한 마음이다. 과거의 소년에서 지금의 아빠까지 도착하면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해야겠다. 아빠, 아빠는 5년 뒤에 뭐 하고 싶어?뭐하고 있을 것 같아?생전 처음인 물음 투성이다.아부지, 이제야 물어봐서 미안하고 늘 고마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