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러 오는 아이에게
1학년 장훈이는 장염으로 조퇴한 날 이후부터 자주 보건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아팠다.
고열에 복통까지 겹쳐 부모님이 급히 데리러 오셨다.
힘없이 몸을 일으킨 아이는 겨우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픈 와중에도 부모님과 함께한 순간이 장훈이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던 걸까.
그날 이후, 장훈이는 “배가 아파요.”라며 하루에도 여러 번 보건실 문을 두드렸다.
장염은 이미 나았고 열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침대에 눕혀 쉬게 하고 따뜻한 찜질팩을 건넸다.
한 시간쯤 쉰 뒤, 장훈이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이 열렸다.
“선생님, 아직도 배가 아파요.”
이번에도 장훈이었다.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돌아온 대답은 조심스럽고도 단호했다.
선생님… 장훈이가 버릇이 들까 봐 걱정돼서요.
종일 보건실에 누워 있어도, 오늘은 데리러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혹시… 챙겨주실 수 있을까요?
그날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장훈이는 거의 하루 종일 보건실에 머물렀다.
그 사이 감기 몸살로 고열이 나는 아이도 있었고, 복통으로 구토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장훈이를 혼자 둘 수 없었다.
사실 보건실은 아픈 아이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지
누군가를 온종일 돌보는 병실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다음 날, 장훈이는 같은 증상으로 다시 보건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였다.
침대에 눕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빠가 왜 전화를 안 받지…?”
초조하게 번호를 누르는 손끝과 달리 부모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이번에도 데리러 오지 않기로 결심하신 듯했다.
“장훈아, 정말 많이 아프면 선생님한테 말해.
하지만 전화를 계속 거는 건 안 돼.”
나는 아이를 다독였다.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는 장훈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요즘 장훈이가 보건실에 오면 집에 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아요.
아이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보건실은 많은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한 아이만 돌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은 아이에게 조금 단호한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다시 보건실로 돌아온 나는 장훈이 곁에 앉아 차분히 말했다.
“장훈아,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우리는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
친구들은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부모님도 일하시니까 매번 오시긴 어려워.
아프면 언제든 보건실에 와도 돼.
하지만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해줄 수 없어.
우리 약속할까?”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말하자,
장훈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그저 집에 가고 싶었던 거라는 걸.
그날 이후, 장훈이는 더 이상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보건실 문을 열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목이 아파졌어요.”
장훈이는 침대에 누워 잠시 쉬었다.
그러다 10분쯤 지나 “괜찮아졌어요.” 하며 스스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기특했다.
“장훈아, 화이팅!”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에 온 마음을 실어 응원을 보냈다.
그 걸음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 보였다.
어른도 아이도
가끔은 숨이 차고 마음이 콕콕 쑤시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잠시 들러 숨을 고르고,
누군가 “괜찮아?” 하고 물어봐 주는 곳이 필요하다.
장훈이에게 그곳은 아마 보건실이었나 보다.
사소한 질문 하나가
어쩌면 약보다 더 큰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곳 문을 여는 아이들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괜찮아, 조금 쉬었다 가자.”
단, 쉴 땐 쉬고,
돌아갈 땐 돌아가자.
그 약속은 꼭 지키는 걸로, 우리.
✏️ 일러스트 by 달토
✏️ Instagram @dalto_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