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그게 나야.

주고 받음의 미학은 그저 가지고 싶었을 뿐인 것.

by 담하dam ha

선물의 시즌이다.

사람에게는 선물의 시즌이 여럿 오는데, 그 여럿 중 하나가 가을이다.

한국은 명절이 있고, 책의 계절이자 운동의 계절이고 다양한 많은 문화가 도처에 깔려있다.

쉬는 날, 흔히 빨간 날이 많을수록 지갑에도 빨간 불이 켜지고 마는데 바로 그런 때이다.

이 선물의 시즌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차 늘어갔는데 기간도 늘고 시즌도 늘었다.

크리스마스 하루였던 것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 되었고, 생일이었던 것이 생일 주간이 되었고, 여름 휴가만 있던 것이 가을, 봄, 겨울할 것 없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쉬는 이 시즌에 우리는 선물이란 것을 교환한다.

감사의 의미인 것이 분명할 텐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체면을 주고받게 되었다.

시즌이 늘어남에 따라서 체면의 무게는 증가하였고, 우리는 빛쟁이가 되어서 주고 받은 선물들의 값어치를 계산하고 꼭 준대로 돌려받는다.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의미인 '선물'은 의미를 상실했고, 우리는 주고 받는 것에 미학이 있는 것처럼 선물을 대한다.

주고 받아야 아름다운 것. 그래야만 인간으로 인정받우 기분을 느끼는 것. 그래야만 도덕적이고 멋진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 것 마냥.

우리는 선물을 사냥하고 선물 받는 사람도 사냥한다.

상대방의 형편과 상관없이 주어진 선물은 부담이 되어 없는 이는 거절해야만 하는 것이 미학이 되어버려, 이제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체면을 위해 나누는 사회적 산물이 되었다.

거절의 거절 끝에 받은 선물은 어찌해야 할 방도를 몰라 방 구석에서 썩어만 가고 받은 이는 전전긍긍하며, 준 이는 받은 이를 마음껏 사냥해 물어뜯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자신이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마찬가지이다.

선물의 시즌에 노동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쉬는 시간 일하는 사람들은 선물의 시즌이란 엄청난 굴레에 갇혀 쉼없이 일한다. 선물의 시즌이 주는 체면치례의 쾌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쉬지않고 일하는 이 노동자들은 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각각의 사연과 사정을 가지고 쉬지않는 이들의 사연이란 것은 없다.

시즌마다 돌아오는 여행선물과 여행담들은 이들에게 괴로운 숙제가 되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선물의 시즌의 번외이기 때문이다.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은 번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선물을 체면으로 불렀던 것일까.

인간의 긴긴 역사를 보자면, 매우 역사깊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그러했겠고, 신라의 화랑들이 그러했겠다.

점점 기간과 시즌이 늘어간 것 뿐.

그럼, 선물은 애초부터 왜 선물이라고 불린 것일까.

선물은 원래 선물이었다.

주고 받는 사람들이 달랐을 뿐.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겠다.

주지도 받지도 않거나 주고 받기를 기대하지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주는 것이 선물이라면.

하지만 선물은 사회적 관계를 이어주고 사람을 사람으로 살아가게도 하는 기능도 가졌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칭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어려운 것이지만 인간의 생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주고받음의 미학은 그저 가지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만 있다면 선물에 서운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은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다.

역시, 적당히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내 삶에서 적당한 인간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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