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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일 새 걸로 사 와도 괜찮을까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 : 책임

by 박단단


고등학교 1학년, 방황의 끝자락에서 막 철이 들었을 때였다. 내 앞길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입시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학급 회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스스로 손을 들어 맡은 일이니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담임 선생님은 학급 운영에 무척 무관심했다. 몇 달 동안 교실 바닥에 빵 비닐과 쓰레기가 굴러다녀도, 삐딱한 친구가 수업 분위기를 흐려도, 교실에서 일어난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뒷짐 지고 관전하던 분이었다. 교과 선생님들은 교실에 올 때마다 무심코 한 마디씩 툭 던졌다. 마치 '오늘 점심 급식으로 뭐 나오니?' 묻는 듯 가볍게.


"여기 회장 누구니? 교실이 너무 지저분하다!"


악의 없는 말이 내 머리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쿵 하고 어졌다. 누구도 시키진 않았지만, 나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으며 매일 교실에 남아 빗자루로 쓸고 닦고 청소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시작한 것을 책임지는 일'의 무게를 알았다. 무게는 하염없이 무겁고, 로는 괴롭고 부담스러운 것, 괜히 짊어지면 숨 막히는 것,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었다.


그 불편한 기억 때문인지 머리가 자란 이후로 나는 책임의 봇짐을 쉽게 지려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족에게도, 동료에게도 책임질 일이 앞에 놓이면 웬만하면 뒷걸음질 쳤다.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면 모른 척한 적도 많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편하고 안락한 장소를 찾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뉴스를 꼬박 찾아볼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열성적인 편은 아니지만, 가끔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다 보면 유독 '나 몰라라…'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따옴표와 점 세 개를 찍어야 그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는 그 문장은 정치면, 사회면, 생활면을 막론하고 등장한다. 정책 실패로 누군가 고통을 받아도 '나 몰라라…', 많은 사람들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혀도 '나 몰라라…', 양육비를 외면해도 '나 몰라라…',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도 '나 몰라라…'. 국가고 기업이고 개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치 짠 듯 '나 몰라라'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내 탓이오,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돌연변이 취급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돌연변이과는 아니었다.


사실 어린아이들이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다. 속이 뻔히 보이는데도 '나 몰라라'의 자세로 퉁치는 아이들이 있고, 요리조리 회피하며 거짓말로 뺀질나게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라고 해서 '나 몰라라…'의 안락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책임의 무게를 기꺼이 안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아직 어린 열두 살 아이들이 좁은 어깨에 책임을 얹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이유 없이 숙연해진다.


몇 년 전 만났던 열두 살 재아와 예지가 떠오른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던 아이들이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1인 1 역할을 맡고 있었다. 청소나 급식 당번처럼 봉사활동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소소한 단기 적성 체험 같은 일이었다. 어떤 역할이 있었는지 예를 들면, 태블릿을 충전하고 나누어주는 태블릿 도우미, 매일 수학 숙제를 검사하는 숙제검사자, 월별로 자리를 바꿀 때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배치 담당자 등 다양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벤트 기획자였다. 이벤트 기획자는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한 시간짜리 행사를 계획하고 운영했다. 마피아게임, 교실피구, 유령기차 등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직접 가져와서 함께 즐겼다.


5월의 이벤트는 '말미잘 술래잡기'였다. 일반적인 술래잡기와 똑같이 한 명의 술래가 다른 사람들을 잡는 놀이이지만, 차이점이 있었다. 중간에 잡힌 아이가 술래의 도우미 역할을 맡아,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마치 '말미잘'처럼 팔을 휘적휘적 뻗어 친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벤트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 사이로 이벤트 기획자를 맡은 예지가 도움을 구했다.


"얘들아, 혹시 집에 뿅망치 있는 사람 있어?"


"뿅망치? 뿅망치가 왜 필요해?"


"아, 내가 해봤는데 술래가 뿅망치를 들고 잡아야지 재밌어"


예지는 뿅망치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나 있어 나! 내가 가져올게!"


영우가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영우는 눈사람처럼 귀여운 남학생이었는데,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인상이었다. 상냥하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영우야 너 있어? 진짜 빌려줄 수 있어?"


"응!"


"그러면 내일 꼭 가져와야 해?"


영우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날, 영우가 가져온 뿅망치는 나와 아이들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빨간색 뿅망치(꽤 큼직하고 삑-삑- 소리가 나는)를 상상했는데 영우가 가져온 것은 문구점에서 천 원정도에 파는, 해바라기씨가 담긴 초콜릿 통에 붙은 미니 뿅망치였다. 모양도 작고, 무게감도 없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얇기도 얇아서 몇 번 하면 부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역시 비껴가지 않았다. 강당에서 신나게 놀이를 시작한 지 이십 분쯤 지났을 때, 뿅망치가 동강- 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초등학생의 에너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교시에 줄넘기, 2교시에 교실체육, 3교시에 운동장에서 50m 달리기를 하고 와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아이들에게 초콜릿 뿅망치는 너무나 가냘픈 것이었다! 친구의 물건이니 조심히 다루자고 약속했지만 잔뜩 도파민이 분출되는 필사적인 상황에서 힘 조절이 될 리 없었다. 술래 몇 명의 손을 거친 뿅망치는 금세 너덜너덜해졌고, 재아가 술래를 하던 순간, 뿅망치 머리 부분이 딱-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버렸다. 아뿔싸, 그 자체였다.


비극적이게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던 해바라기씨 초콜릿이 투명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졌다. 시끌벅적하던 강당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어엇!"


아이들이 식겁한 표정으로 재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뿅망치의 주인인 영우도 달려왔다. 당황함 반, 속상함 반이 섞인 얼굴, 영우는 금방이라도 울했다.


"이거 어떡하지?"


"헉, 완전히 부러졌네"


다른 아이들은 부러진 뿅망치를 들고 서있는 영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어른인 내가 나설 차례였다. 얼른 아이들에게 바닥의 해바라기씨를 줍게 하고, 영우를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아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영우를 바라봤다.


"어, 영우야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


갑자기 잘 놀다가 친구의 물건을 부러뜨린 꼴이 된 재아나 일부러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속상한 영우. 둘 다 억울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년간 아이들을 지켜본 경험상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서로를 탓하며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던 재아가 비장한 표정을 짓고 말을 꺼냈다. 어떤 결연한 기운이 눈에 감돌고 있었다.


"영우야, 이따가 교실 가서 내가 무. 조. 건 고쳐줄게"


그리고 뒤에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벤트 기획자 예지가 몰려있는 아이들을 헤치고 영우 앞에 다가가 말했다.


"나도 도와줄게. 내가 빌려달라고 한 거잖아"


교실로 올라온 재아와 예지는 뿅망치 소생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음매가 아예 부러져 이전처럼 완벽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재아와 예지는 투명테이프를 가로로 붙였다 세로로 붙였다, 노란 고무줄을 일자로 묶었다 엑스자로 묶었다 하며 뿅망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6교시가 끝난 후 다른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도 재아와 예지는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뿅망치를 고쳤다. 하교 시간이 이십 분쯤 지나고 나서 재아와 예지는 교실 구석에서 기다리던 영우에게 뿅망치를 건네며 말했다.


"영우야, 우리가 고치긴 했는데 이 정도면 어때? 막 세게만 안 휘두르면 꽤 오래갈 것 같은데"


"맞아. 별로 티 안 나지? 이제 괜찮아?"


뿅망치를 받아 든 영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하는 표현이었다. 다행히 강당에서보다는 훨씬 밝은 표정이었다. 영우와 재아는 학원을 가야 한다며 먼저 집으로 갔고, 예지 혼자 남아서 가방을 챙기던 중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응?"


"저 뿅망치.. 아무래도 박살이 나가지고요.. 혹시 제가 내일 하나 사 와도 괜찮을까요?"


"사 온다고? 그래도 열심히 고쳐줬잖아, 영우도 괜찮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제가 하자고 한 게임이어서요."


"예지 너 마음 편한 대로 해. 부모님과도 상의해 보고"


그리고 다음 날, 기어코 예지는 학교 앞 무인판매점에서 똑같은 초콜릿 뿅망치를 사 와 영우에게 건네주었다. 쉬는 시간, 지나가던 예지에게 물었다.


"예지야, 결국 사 왔어?"


"네!"


"신경 많이 썼겠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하자고 한 일이니까 마무리도 제가 해야죠!"


짧은 대답을 끝으로 예지는 친구들과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 학교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뿅망치를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재아가 '미안해' 한 마디하고 뒤돌아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부담하려는 마음, 외면하지 않고 책임지려는 마음. '나 몰라라'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기가 시작한 일이라며 끝까지 남아 도와준 것도 모자라 새로운 뿅망치를 사서 친구에게 건네는 예지의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시작한 일임에도 책임지지 않으려 이리저리 피했던 적이 많다. 책임은 무겁고, 엄중하다고만 생각하며 피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더라도, 내가 불편하지 않은 상황을 먼저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열두 살 아이들의 마음속 깊이는, 가끔 어른이 짐작할 수 없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나 몰라라…'의 인터넷 뉴스로 돌아가 본다. 잔뜩 쌓여있는 댓글목록을 눌러보면 '나이만 먹고 어른은 못 됐다'라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런데 '나 몰라라'와 어른이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어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어른[어ː른]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그중 책임이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에 책임을 지는 것,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내가 시작한 행동에 정당한 책임을 지는 것. 나는 과연 어른일까. 나이만 잔뜩 먹고 으스대는 철부지는 아닌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뺀질거리며 사는 건 아닌지, 단물만 쏙 빼먹는 기회주의자로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교실에서 뿅망치를 고치고,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던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의 벼랑 끝까지 서는 법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나도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결심이 단단히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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