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 : 양심
언젠가 꼭 가고 싶었던 야구 경기의 티켓팅을 성공한 적이 있다. 대학교 수강신청은 물론, 교생 실습 학교를 정할 때도 '정각 00초 선착순 클릭'에 번번이 좌절해 집 앞 초등학교를 두고 왕복 두 시간을 오가던 나인데, 이번엔 웬일로 그 속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2300번대 대기 중'이라는 아슬아슬한 문구를 마주쳤지만 결국 2연석을 손에 넣었다. (아주 나이스!)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를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성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등에 업고, 고고한 자세로 좌절한 이들의 한탄과 비속어를 훑어보던 중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야구 티켓, 시야 좋은 응원석, 2연석 10부터, 한 자리씩 안 팝니다]
'2연석 10부터?' 두 자리에 10만 원이라는 뜻인지, 한 자리에 10만 원씩 총 20만 원이라는 뜻인지 헷갈렸다. 시야 좋은 응원석이라니 부럽다.. 가 아니라 벌써 티켓에는 프리미엄이 붙어 암표로 팔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티켓팅에 성공했는데! 쿵쾅거리는 심장과 뻣뻣한 손가락으로 간신히 마우스 좌클릭을 연타해 얻어낸 자리인데 이걸 이렇게 판다고? 중고거래 카페와 티켓 거래 사이트에도 원가의 몇 배를 붙여 '절대 사람의 힘으로 쉽게 얻기 힘든 꿀자리'를 판다는 글이 불티나게 올라왔다.
묘한 착잡함에 화면을 끄려던 순간, 불쑥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잠깐, 야구장도 먼데... 나도 웃돈 얹어 팔고 그냥 집에서 볼까?'
헉! 생각과 동시에 경악했다. 상사 흉을 보다가 들킨 사람처럼, 괜히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스스로 놀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변명을 늘어놓을 준비를 했다. 흠흠, 야구장이 멀기도 하고, 이번에 반드시 가야 할 경기도 아니고, 날씨도 덥고.. 생각은 할 수 있지, 실행하지 않았으면 된 거지..! 보이지 않는 재판관을 향해 잔뜩 변호를 이어갔다. 하지만 곧 헛웃음이 나왔다. 한 겹 두 겹 쌓아 올렸던 변명을 걷어내고 나니, 그저 핑계였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고작 몇 만 원 유혹에 넘어가려 하다니! 필요 없으면 깔끔하게 취소하면 될 일을, 웃돈 주고 팔아야 이득이라는 생각에 그새 욕심을 부리려 했다. 평소 매크로로 티켓을 잡아 되파는 사람들을 얼마나 욕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와 공급 운운하며 가격을 올리는 걸 두고 얼마나 열변을 토하며 반대했었나. 그런데 막상 내 손에 티켓이 들어오자, 양심은 순식간에 타협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합리화하기 위한 꾀만 잔뜩 늘어나다니.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뻔뻔하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요즘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마음속 양심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주민센터에 끝내 돌아오지 않는 양심우산(변명:그 우산이 그 우산인 줄 몰랐다), 길가 테이블 위에 놓은 빈 테이크아웃잔(변명: 쓰레기통이 없다)은 사소한 축이다. 무인판매점에서 계산 없이 들고 나오는 아이스크림(변명:키오스크 작동이 잘 안 된다),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자동차전용도로에 차를 무단 주정차하는 위험천만한 일(변명: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필요이상으로 값을 올려쳐 물건을 파는 행위(변명: 돈을 벌어야 한다). 더 크게는 사기 범죄까지. 어느새 양심의 외면은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든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양심 이야기를 하는가? 혹시 조선시대에 사는 거냐며, 공익캠페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냐며 코웃음을 칠 누군가의 얼굴이 상상된다. 스스로의 이익을 알아서 잘 챙기는 게 곧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시대에서 도대체 왜 굳이 양심을 붙들어야 하는 걸까.
타협과 합리화의 기운이 몰려올 때마다 4학년 아이가 했던 질문을 떠올린다.
몇 해 전, 학생자치 업무로 만난 전교 부회장 후보 4학년 서아의 질문이다.
학교 밖 세상에서 자치의 개념을 중시하듯, 학교 안에서도 학생자치활동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치업무를 맡은 교사로서 가장 큰 신경을 쓰게 되는 일은 한 해를 이끌어갈 전교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선거라서 가볍겠지'하는 생각은 오산! 절대 허술하지 않다. 투표권을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국가답게 초등학교부터 전교임원을 뽑는 과정을 꽤 빈틈없이 진행한다.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선거벽보 제작, 선거운동, 소견발표, 투표와 개표까지 실제 선거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아와의 일은 바로 '선거벽보 만들기' 단계에서 일어났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당시 우리 학교는 선거 벽보를 만들 때 후보자 전체가 같은 장소에 모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전에는 각자 알아서 만들어오게 했더니 가지고 온 결과물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아이들이 가진 힘은 비슷비슷한데, 가정에서 밀어줄 수 있는 힘은 천차만별이었다고 해야 할까. 전문업체에 맡기거나 부모님이 힘껏 도와준 아이와 고사리손으로 혼자 만들어온 아이의 결과물 차이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공정성을 위해 만든 원칙이었다.
그 해, 전교생이 사 백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에 전교 부회장 후보가 무려 여덟 명이나 나왔다. 이제 막 5학년이 되는 4학년 아이들이었는데, 중학년 특유의 앳된 티가 나면서도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이들에게 벽보를 만드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수요일 방과 후 두 시부터 네 시 삼십 분까지 모여서 함께 만들 테니, 필요한 준비물을 알아서 가져오라고 말했다.
당일에 모인 아이들은 각자 챙겨 온 준비물을 책상 위에 잔뜩 늘어놓았다. 본인 얼굴 사진, 형형 색깔의 색연필과 사인펜, 귀여운 꾸밈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당시에 다꾸가 재유행했었다), 공약을 메모한 종이. 여덟 명의 아이들은 열심히 벽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를 대고 본인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중요한 낱말은 색깔로 표시하며 공을 들이는 모습이 무척 기특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교실 한 바퀴 둘러보니 유달리 더딘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공약을 적고 있는데 아직도 본인 이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조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조금 서두를 필요는 있었다. 이름을 보니 김서아였다.
"서아야, 우리 4시 30분까지 다 완성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빨리 해볼게요"
"조금 서둘러서 하자"
"네!"
만화 닥터슬럼프의 주인공 아리를 닮은 아이였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맑고 큰 눈이 반짝거렸다. 서아는 조그만 손을 움직이며 하던 일에 다시 집중했다.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아를 포함한 두 명의 아이만 남아 바지런히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전화상담이 예정돼 있어 정신없이 색칠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 잠깐 일이 있어서. 거의 다 했니?"
"네!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아요"
"다 만들면 선생님 책상에 두고 집에 가세요"
"네!"
상담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퇴근 준비를 하러 돌아온 교실의 책상 위에는 전교 부회장 후보 여덟 명의 벽보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열한 살짜리들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벽보는 어설펐지만 최선을 다한 흔적이 잔뜩 묻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1교시 수업준비를 하는데 교실 앞문이 열리면서 안경을 쓴 조그만 아이 한 명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어제 마지막까지 남아서 벽보를 만들던 서아였다.
"저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나요?"
"어 안녕! 어제 뭐 두고 갔니?"
"그게 아니라, 그 말할 게 있어서요. 잠시만.."
왠지 긴장한 표정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우리 반 6학년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나를 잠시 밖으로 불러냈다. 혹시 선거를 포기하고 싶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제가 어제 벽보 만드는 게 좀 오래 걸렸잖아요. 잘 안되기도 하고, 떨려가지고요.."
"응, 그런데? 잘 내고 갔던데?"
"아 그런데요.. 사실 4시 30분까지 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10분쯤 늦게 냈어요. 괜찮나요?"
"어?"
"어제 집에 가니까 계속 생각나서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요즘에도 이렇게 솔직한 아이가 있다니!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 그냥 모른 척해도 될 텐데 이른 아침부터 이걸 말하려고 6학년 교실에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서아는 똘망함과 불안함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규칙대로 하면 시간을 넘은 것은 맞지만, 이 일은 자기 힘으로 벽보를 만드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랬구나. 서아야, 원래는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 해.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약속한 일은 꼭 시간 안에 하도록 하자. 우리 학교는 벽보 만드는 시간을 정해놓은 규칙은 없어서 괜찮을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이는 서아를 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인데, 이렇게 직접 와서 말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근데, 서아야. 선생님께 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했어?"
"아니요. 뭔가 마음이 불편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서아는 재빨리 인사하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서아의 대답은 '불편하다'였다. 짧은 한마디였다. 불편함 위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보호막을 씌우지 않은 서아의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옛 인디언들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삼각형 모양의 양심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삼각형은 거짓말, 나쁜 생각, 부끄러운 일을 할 때마다 빙글빙글 돌면서 마음을 쿡쿡 찌르는데, 인디언들은 그것을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신호라고 여겼다. 양심을 지키면 삼각형은 제자리에 멈추고, 무시하면 계속 빙글빙글 돌다가 마침내 모서리가 무뎌진 원이 된다. 그러면 더는 양심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문득 묻게 된다. 내 마음속 삼각형은 아직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을까. 또렷하고 명민하게 반응했던 어릴 적 삼각형이 타협과 합리화의 시간에 묻어 많이 무뎌진 것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양심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동그란 양심이 많아진 사회는 부끄러움을 알 수 없다. 세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질서와 타인의 고통에 한없이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기적이고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유혹이 참 많고, 우리는 이익과 양심의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세상일을 모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좀 더 옳은 것과 좀 더 그른 것이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아닌 것이 있으니 삼각형이 아직 원이 된 것이 아니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5학년 사회 시간에 법과 양심의 차이를 물으면 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법과 양심은 무엇이 다를까?"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양심은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하면 좋은 거요."
"하면 누가 좋을까?"
"음.. 저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좋겠죠?"
마음속 삼각형이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다면, 가끔 뾰족하게 돋아난 꼭짓점에 찔릴 때가 있다면 그 불편함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