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 수행
하루에 피곤을 녹여주는
따스한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발등으로 주르륵 떨어져 내린다.
너를 비누에 힘을 주어 문지르곤
두 손으로 몇 번을 꼼지락거리면
솜사탕 같은 거품이 손 안 가득 담긴다.
방금 뽑은 가래떡을 길게 늘인 것처럼
작고 작은 방울이 뭉게구름처럼 모인 너에
처음과 끝을 양손으로 부여잡곤
삶에 흔적이 무겁게 앉아버린
두툼한 어깨와 등판을
몇 차례 오가다가 온몸을 휘젓는다.
기포가 사그라든 너는, 발등에 잠시 머물다가
까슬까슬한 발꿈치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막바지엔 발바닥 밑에 깔리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끝내 너는, 푹푹 찌는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내팽개친 잡초처럼 매가리 없이 널브러지고 만다.
매일매일 주인을 위해
똑같이 반복되는 행위 앞에
너는 온몸이 찢겨 나가더라도
한마디 불평 없이
비눗방울 한 점까지 다 토해 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신이시여,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하소서.
살아 있음을
누릴 수 있음을
은유할 수 있음을
그리고
사랑하고 받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