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거라고는 '축구, 가우디'밖에 없는 도시에 뭐하러 가냐고 했다.
이제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이 도시의 이야기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의 둘째 날 우리는 '가우디 투어'를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 처음 온 사람들 누구나 한다는 '가우디 투어'였다.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 흩어진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는 투어를 한다.
가이드는 스페인에 와서 처음에는 서부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했다. 여행 가이드로 취업이 되어 동부, 바르셀로나로 간다고 했더니 스페인 친구들이 그러더란다.
"볼 거라고는 축구, 가우디밖에 없는 도시에 뭐 하러 가냐"라고.
와보니, 또 살아보니 그 말이 맞더란다.
있는 것이라고는 '축구와 가우디'뿐인 도시.
여느 여행기처럼 이것을 보고 이것을 봤어요. 이것은 이랬어요, 저것은 저렇더라고요 하는 여행기가 될 테니 지켜보시라.
그래 봤자, '축구와 가우디'일뿐.
자연을 닮은 건축
이른 아침, 카사 밀라 앞에서 모였다. '카사'라는 말이 스페인어로 casa, 집이라는 뜻이니,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는 밀라의 집, 바트요의 집이다. 당시의 부잣집을 가우디가 설계하여 지은 집인데,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있다. 굳이 투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이 길을 지나다 보면, 너무 특이해서 '아, 이건 가우디 건축물이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가우디는 자연을 닮은 건축물을 지었다.
카사 바트요는 바다를 닮았다. 내부는 바다색 타일을 이용하여 장식했고 심해로 짙어가는 바다색을 나타냈다. 사람의 모양도 닮았으니, '해골'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카사 밀라의 창은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자연의 모습을 닮았다 치면, "산"의 곡선을 그리게 된다. 옥상을 잘 살펴보면, '스타워즈'의 주인공을 찾아볼 수도 있다.
구엘공원에서는 궂은 날씨가 환하게 갰다.
바르셀로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에서는, 저 멀리 몬주익의 언덕도, 바르셀로나타 해변도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저 아래 있는 사탕 모양일지 과자 모양일지 모를 집 두 채가 눈에 들어온다. 가이드는 이 공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경비원들의 집을 지은 것이라고 했다. 가우디의 사람을 위한 배려가 어땠는지 알 만했다.
인간의 발명, 기술 개발, 창조해내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은 과학이 발달해감에 따라 앞서의 모습을 지운다. 어제의 그것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은 금세 변해간다. 전화기만 봐도 그렇다.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기만으로도 신기했던 시절이 불과 20년 전이다. 이 모든 것을 전화기 하나에 담아낼 줄 누가 알았을까.
앞서의 명제와 다른 것이 하나 있으니, 예술의 영역이다. 사람의 미적 감각은 고대에 이미 모두 발달한 것이어서 시대를 거듭한다 해도 새로운 감각이 발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신석기 때의 토우를 보고 '와 이렇게 귀여운 흙인형을 그때 만들었다니'하는 감동, 신라의 금관과 귀걸이 장식을 보며 '지금 써도 좋겠다' 하는 생각은 나름 이유가 있다. 가우디의 건축 또한 그렇다. 1902년 구엘공원, 1907년 카사 바트요, 19010년 카사 밀라. 100년 전의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모습이다. 지금의 뛰어난 건축가가 이어 짓는다 해도 이만큼의 감각과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신을 대신하여 만든 성당,
성 파밀리아 성당
가이드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버스를 세우고는 걷게 했다. 단, 바닥이나 옆을 볼 것. 조금 걷다가 가이드의 말을 듣기 위해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장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어, "고개를 들어 보세요."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건축물. 성 파밀리아 성당이 펼쳐진다.
전율.
이 단어를 이보다 더 잘 알게 할 수 있을까.
머리 한쪽을 짜릿하게 울리는 감동이 목, 어깨를 지나 팔뚝으로 흐른다. 이 닭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성 파밀리아 성당, 성가족 성당. 이렇게 불리는 이 엄청난 감동을 전하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암으로 지어져 건물의 색조차 시절이 지나며 짙어진다는 풍파의 흔적을 가진 성당. 걸음을 잊은 채 한동안 멈춰 섰다.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사람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옆을 보니, 아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리다고 해서 감동이 다를 리 없다. 말도 없이 한동안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아이들에게 이 느낌은 어떻게 남을까.
아이들도 아내도 또 나도 이 성당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하면 대표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도 대강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랬는데도 이렇게 두 눈으로 보는 이 감동은 달랐다.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백 년을 넘게 지어오고 있는 성당. 글을 모르더라도 성경을 알게 하기 위하여 성당의 외벽을 조각하여 장식했다는 가우디의 그 마음이 전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성당 앞에 선 나는 작아 보였다. 백 년 전을 살다 간 사람이 만들어 낸 이 건축물 앞에서 내 삶이 초라해 보였다. 작아지기만 하는 내 삶이 다시 힘을 얻게 된다면, 바로 이 자리일 터다. 내 삶이 '위대하다'라는 노력이 시작된다면 바로 이곳이리라.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사람의 정성이 백 년을 지나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 감동.
성 파밀리아 성당은 세 개의 파사드로 구성된다. 파사드는 건축물의 출입구가 있는 정면을 뜻한다. 세 개의 정면이 있는 셈인데 각각의 의미를 두고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과 영광의 파사드. 이 중에 가우디가 설계하고 완성한 것은 '탄생의 파사드'뿐이다. '고난의 파사드'는 수비라치라는 스페인 건축가가 1970년대 완성했고, '영광의 파사드'는 일본인 건축가가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성당은 아직 지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가우디가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와 나머지의 느낌이 다르더라는 것. 폄하하자면, 어느 대형건물에서 볼 수 있는, 말끔하고 깨끗하고 거대하기만 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비라치는 그랬다고 한다. 가우디가 남겨놓은 대로 이어 짓는 것보다 나는 나대로 해석하고 짓는 것이 가우디가 남긴 유산을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아직 짓고 있는 '영광의 파사드'를 기대해본다.
안토니 가우디는 늘 같은 시각,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1926년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천재 건축가는 늘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지나가던 전차에 치여 가우디는 사망한다. 옷차림이 허름해서 그 누구도 천재 건축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삶은 검소하고 소박했지만, 그의 건축물은 시대를 지나도 뛰어넘을 수 없는 위대함이 있었다. 그의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성당을 완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해진 속도로만 따라잡을 수 없는 가우디의 마음이 완성된 성당에 얼마나 나타날 수 있을까.
구엘공원에서의 과자 모양의 집은 경비원과 청소부들을 위한 숙소다. 성 파밀리아 성당, 고난의 파사드 정문 앞에는 작은 단층 건물이 하나 있다. 1883년 가우디가 처음 이 성당을 짓기 시작할 때, 인부들의 아이들이 공사장에 와서 노는 것을 눈여겨보고 지었다는, 지금의 직장어린이집이다.
감동은 그의 건물에 흐르는 사람을 향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가우디의 건축을 돌아보는 마음이 따뜻했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니아'로 살아가기,
FC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경기장
바르셀로나에서는 나흘의 일정이었지만, 정해진 것은 이틀째 '가우디 투어'뿐이었다.
실은 떠나기 전부터 FC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있다면, 예매를 하려고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아이들을 위한 여행의 일정을 거의 준비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이들을 위한 일정을 뭔가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내 있었다.
가우디 투어를 함께 했던 가이드는 경기일정이 없어 캄프 누 경기장을 방문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우리 가족에게 캄프 누 경기장 투어 프로그램을 권했다. 경기장에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전시공간과 경기장, 라커룸, 샤워장, 기자석까지 관람하는 것인데,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같은 얘기를 아이들이 함께 들었으니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근처의 백화점에 가서 할인 중인 유니폼을 샀다. 등번호 10번, "MESSI"라고 새겨진 유니폼.
1월의 날씨임에도 반팔 유니폼을 입은 아들내미를 앞세워 지하철을 타고 캄프 누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도 없고 평일인데다 관람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했지만.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바르셀로나가 축구의 도시가 되고, FC 바르셀로나가 도시의 모든 것이 된 것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스페인 내전으로 통합된 카탈루냐 지방이 늘 독립을 꿈꾸게 되었고, 축구는 그들의 독립을 상징하는 운동이 되었다. 축구만은 꼭 이기리라. 전반 17분 14초가 되면,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독립을 외친다. In - Inde - Independencia. 카탈루냐 국기를 꺼내 들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글로만 배운 세대지만, 그들의 독립을 외치고 염원하는 마음은 어쩐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들의 축구가 축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야구팬이다. 한 팀을 응원하고 한 팀의 승리를 위해 이야기 나눈다. 야구로만 이야기한다면,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할 수 있다. 그런 우리 가족을 FC 바르셀로나에 흠뻑 빠지도록 만들었다.
출발할 때 투어 프로그램이 한 시간 반 정도 된다길래, 뭐 그렇게 볼 게 있느냐고 했다. 우리는 두 시간을 넘겨서야 경기장을 나왔다. 나오는 길, 오직 바르샤(FC 바르셀로나)의 경기용품만 파는 메가스토어에서 우리는 두 손 가득 물건을 사들고 나왔다.
MESSI만을 알던 우리 가족이 FC 바르셀로나의 마니아로 다시 태어나던 순간이었다.
'축구와 가우디뿐인 도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후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축구와 가우디'뿐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도시의 모든 것은 그것으로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된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의 여행 사흘째, 우리는 몬세라트에 올랐다. 가우디가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의 영적인 산. '웅장하다'라는 말이 단조로울 정도로 마음의 깊은 울림이 있었다. 알고 봐서 그런지, 가우디가 과연 영감을 받을 만한 신성한 산이라는 것도 언어의 표현보다 깊은 느낌으로 알게 했다.
100년을 흘러도 이 도시 곳곳에 반짝이는 가우디의 건축물과 17분 14초면 모두가 일어서서 외친다는 캄프 누 경기장의 독립의 외침은 도시 전체에 노란 리본으로 나부끼고 있다. '축구와 가우디'뿐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도시는 차고 넘쳤다. 도시의 모든 것이 이 두 단어로 해석이 가능한 바르셀로나. 우리는 그곳에서 100년을 흘러 이어지는 가우디의 정성과 마음을, 300년을 너머 이어지는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두고도, 스페인에서는 단 한 번도 올림픽이 열린 적이 없다고 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우리는 스페인어도 할 줄 안다고 했다.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깃발이 공존하는 바르셀로나.
우리가 아이들을 스페인에 관한 책 한 줄 읽히지 않고 데려간다는 것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스페인은 공부를 하고 가야 할 곳이라고 했다. 백번 맞는 말씀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니까.
결국 우리는 스페인 공부는 역사를 좋아하는 나만 했고,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이라고는 이들이 왜 노란 리본과 카탈루냐 깃발을 베란다에 내다 걸었는지, 왜 '카탈루냐 독립'을 외치는가에 대한 역사적 이유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이들이 FC바르셀로나의 승리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 이들에게 '축구와 가우디'뿐인 것은 그들이 가진 역사의 아픔을 이 두 가지에 응축시켰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들이 이 도시를 여행하며 느낀 이 도시의 열정과 열망을, 오랜 세월 지켜내고자 하는 정성의 마음을 느꼈다면 좋겠다. 글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느낌을 알아차린 후라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며, 여러 책을 읽었다.
(여행은 글로 하는 거니까요.^^)
그중 가장 도움이 됐던 책은 2권이었다.
스페인 역사와 문화를 세세하게 소개하고 읽기 좋았던 책. 이 책을 읽고 간다면, '스페인'은 다르게 보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바르셀로나는 모두 가고 싶었다.
※이 글은 아래의 글과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계속 읽으신다면, '작가챗쏭'에게 빠져드실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