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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Dec 20. 2023

대항의 숲속에서 목욕을 하다

다시 만난 사량 4화

이선정作  섬으로 가는 길   oil on canvas


   뜨거운 해풍 때문인지 환자가 열 명이 채 안 된다. 천천히 책장 넘기다 낮잠도 자는 사치를 부린다. 오후 네 시경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단잠을 깨운다. 이 섬의 문제 환자였다.     


   보건지소엔 결핵성 늑막염 약이 없으니 육지의 큰 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내 말을 한쪽 귀로 흘려듣고,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면 지소에 와서 몇 번이나 행패 부린 전력이 있는 사람. 영양제를 맞겠단다.     

   

   십 분 뒤 시큰둥한 얼굴로 보건지소에 들어선 그는 내 앞에 불만을 한가득 토해냈다. 삼천포 병원에 삼 일간 입원했는데 가슴에 찬 물은 빼주지 않고 약만 주길래 사흘 만에 퇴원했다고 했다.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있다고 했다. 의사의 치료 방침에 잘 따르면 좋아질 거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막무가내다. 누구에게 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성질만 부리고는 휑하니 나가 버린다.     


   하루를 마치고 보건지소 관사를 나왔다. 기름집 사장이 아들 데리고 삼천포로 나가는 바람에 테니스 파트너가 없다. 낡은 오토바이에 라켓 하나 둘러메고 혼자 중학교로 향했다. 모인 사람 마침 세 명. 선수 한 명 모자란 덕분에 테니스 한게임같이 하고.      


   대항 숲속으로 달렸다. 해가 빨리 저무는 가을의 길목. 소 울음소리 멀리서 들려오고 괴기한 새 울음소리 어둔 숲이 곤두선다. 인적없는 옹달샘 곁에 옷을 벗어 놓은 뒤 찬물 두어 번 끼얹었다. 물 한 바가지에 시원한 저녁 공기 폐 한가득 들이킨다. 여기저기 끼어 있던 온몸의 먼지 다 날아간다.     


   개운하다. 이 얕은 산 숲속 옹달샘에서 혼자 하는 목욕을 무슨 성스러운 의식인 양 몇 번씩 되풀이한다. 어두컴컴한 산길을 내려와 오토바이 시동을 켠다. 기다리는 이 없는 보건지소로 달린다.

지금은 몇시 쯤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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