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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Dec 27. 2023

밤바다 찬바람 밀려가는 달

다시 만난 사량 5화

이선정作  섬으로 가는 길 II   oil on canvas


   보건요원 시어머니의 출상이라 통영 시내병원으로 조문하러 갔다. 문상을 마치고 사량도로 들어가는 배편을 알아봤더니 엔젤호도 고려호도 출항하지 않는다고 했다. 폭풍주의보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본가에서 옷가지 몇 서둘러 챙긴뒤 버스 타고 가까운 고성으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사량도로 들어가는 카페리호인 다리호 선착장이 있는 춘암까지.

   거금 만 오천 원 대절택시 헐레벌떡 달렸으나 아뿔싸. 나의 ‘다리’호가 항구를 벗어나는 중이다. 오 분만 더 빨리 왔더라면. 다음 배는 한 시간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낚시꾼 몇 뒤늦게 달려오고 

   지서장님, 수협 조합장님 얼굴도 숨이 차있고 

   바닷가에서 잠시 한담 나누다 선착장에 나가 쪼그려 앉았다. 

   눈앞의 파란 바다

   맑은 하늘에 소나기 내리는 것도 아닌데 

   잔 바다 무수히 이는 작은 파문 

   흔들리는 파문 두 눈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았다. 

   수많은 멸치 떼

   멸치들이 뭔가에 쫓기듯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잔잔했던 바다가 은빛 광채를 뿜어내었다.     


   빛나는 멸치 떼 따라다니다 다음 ‘다리’호에 올라 다시 사량도로 돌아왔다. 보건지소 관사에 도착하니 어느새 다섯 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앉아 있으니 지서의 박 경장이 술 한잔하잔다. 박 경장, 이 순경 그리고 방위병 몇과 맥주 한 순배씩 나누고      


   지소로 돌아와 서울서 구해온 매킨토시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 얘기로 다투고 나니 마음이 아팠다. 무거운 마음으로 공중전화 카드를 챙겼다. 지소 앞 모퉁이에 있는 공중전화로 다시 나갔다.

   머나먼 남도의 작은 섬에서 내가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못 해준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밤바다를 걸었다. 까만 하늘에 샛노란 달이 한가득이다. 바람은 선선히 맨살에 부딪고 파도는 찰랑거리는 소리로 귓전에 와 닿는다. 선창에 가만희 서 있으려니 

   이는 바람에 파도가 밀려가는지 아니면 달빛이 저리로 떠가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흘러가는지 서늘한 이 밤

   세월이 무심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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