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방법
이 바닷마을에 살며 배운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천천히 사는 법을 말하고 싶다. 서울에서는 언제나 분주했다. 출근길은 다음 지하철을 놓칠세라 언제나 뛰어다니거나 빠른 걸음을 걸었다. 지하철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도 최단시간으로 환승하고 싶어 특정한 번호가 새겨진 열차 앞에 서있었고,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무조건 빈자리를 사수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내가 싫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꽤나 오랜 시간을 사람들 틈에 끼어 숨도 쉬지 못하고 아침 시간을 지내야 했다. 그러니 나는 살기 위해 무례함을 무릅쓰고 나보다 먼저 내려야 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가려 애썼던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제쳐야만 했던 삶, 다른 이들의 편의를 짓밟아야 했던 삶이었다.
휴직 중에도 일이 있어 가끔 서울에 올라갈 때면 늘 놀랐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몰아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 당황했다. 지하철에도 가까운 거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입력값(?)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 있었다. 한 번은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는 남편에게 물었다.
왜 여기는 이렇게 차가울까? 이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일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다 차가울까?
남편은 말했다.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 각자는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가기에는 이미 너무 차고 넘쳐서, 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람으로 인식하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버거우니까, 그냥 인간으로 여기기를 포기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냥 ‘이것’ 혹은 ‘저것’으로 보면 우리의 영혼이 처리할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확 줄여주니까 따뜻하게 보기를 포기하는 거 아닐까?
언젠가 한번 바닷마을에서 만난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울에 가면 사람들이 너무 쌩하더라. 강남역을 지나가는데 너무 사람 같지가 않더라. 그래서 너무 외롭더라. 여기서는 눈이라도 한번 쳐다보는데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고 지나가더라.
나도 서울에선 그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쳐다보고 관심을 갖기엔 너무 바빴다. 오로지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걸었다. 하늘을 봐도 온갖 빌딩에 막혀 눈이 답답했다. 답답하니 예민해졌다. 늘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생기가 있었지만 다들 나 같은 사람들에 치여 피곤해 보였다.
몇 달 전 서울에 와서 지하철 3호선 열차를 탄 적이 있다. 열차의 문이 열렸고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열차에 타야 하는데 젊은 여자가 열차 문 앞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비좁지만 자리가 약간 있었다. 그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녀를 제치고 가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그녀를 제치고 그녀의 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가면서도 그녀는 꿋꿋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옆에서 보다 못한 건장한 한 남자가 그녀의 겉옷을 톡톡 치며 사람들이 들어오니 자리를 옆으로 조금 비켜서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녀보다 얼굴 한 뼘은 더 큰 남자였다. 여자는 마치 물이 끓는점을 만난 것처럼 폭발했다.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니가 뭔데 내 몸에 손을 대. 경찰 부를까? 뭐하는 거야 지금?
혼자 발광하는 개처럼 짖었다. 그녀의 앞모습은 보질 못했지만, 뒷모습은 긴 생머리에 평범하고 멀쩡한 숙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다. 남자가 말을 그친 후에도 그녀는 한참을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대체 얼마나 화가 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에 그렇게 쫓기며 살길래 이럴까.
남자에게도 여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자진해 용기 내어 준 그 사람에게 고마웠고 그런 그의 용기가 이 한 번의 사건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봐 안타까웠다. 얼마 안 가 열차는 교대에서 정차했다. 그녀와 그 남자, 그리고 나는 함께 내렸다. 대체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그리고 많이 놀라셨겠다고.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제정신 아닌 것 같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짧은 대화를 끝내고 갈 길을 갔다. 그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서로 너무 화가 나 있는 이 도시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삶의 속도를 논하는 이 글을 쓰며 왜 나는 이 일화가 떠올랐을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나를 보듬어주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무게가 조금은 덜어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닷마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번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한 식당에 들러 주차를 해야 했는데 나는 당연한 듯 주차하는 동안 식당 자리를 맡고 있겠다고 했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은 행복한 여행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닷마을의 친구는 그런 나를 막아섰다.
아니다. 그냥 다 같이 주차하고 다 같이 식당에 가자. 괜찮다.
효율적이지 않은 삶은 나에게 피해야 할 악이었다. 혹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사람이 붐비는 식당에 갈 때도 함께 주차하고, 함께 식당까지 걸어가며 조금 느리지만 그 시간까지 온전히 함께 여행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휴게소에 들러 한참 수다를 떨었다. 지금껏 나에게 휴게소는 급한 용변을 처리하거나 배가 너무 고플 때만 잠깐 식사를 하고 가는 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닷마을 친구들은 퇴근시간에 도로가 막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대화를 나누는 서로에게만 느긋하게 집중하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간혹 외국에 나가면 모든 것이 느긋하게 돌아가는 삶의 방식에 감탄을 하곤 했지만, 나는 그런 삶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내 개인 상담 선생님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을 받으려던 에너지를, 사실은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므로,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시고 존중해주고 계신다는 걸 정말로 믿게 된다면) 나를 입증하는 데 쓰이던 에너지를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데 쓸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바람이 너무나 큰 나머지, 한정된 힘을 내 능력치를 높이거나 누군가를 쫓아가는 데 다 써버려서 우리 곁에 있거나 우리를 잠깐 스치는 이들에게 작은 애정을 줄 겨를이 없는 것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참된 애정을 받을 때 그를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게 된다. 투자를 잘해서 4억 차익을 남긴 사람은 부러워할 존재이지, 끝까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친구가 되지는 못 한다.
이곳에서도 가끔은 마음이 괜히 분주해지고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창밖으로 바다를 본다. 햇살에 비춰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는 불안한 내 마음을 향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새벽녘 동틀 때엔 괜히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난다. 비가 오고 흐린 날 바다는 묵직한 안개로 요동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환한 달이 뜬 날이면 밤바다에 비친 달빛으로 출렁이는 바닷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이 마을에 머물러 지낸 지도 10번째 달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지만 계절은 점점 내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추운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우리나라 남쪽에 있어서 그런지 아직 가을이 더디게 온다. 마치 모든 일을 여유 있게 맞이하는 이곳 사람들처럼. 바닷마을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르쳐준 소중한 마음가짐을 나는 정성스레 간직하고 싶다. 여전히 도시에 당도하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지는 나이지만 그럴 때면 이 바닷마을의 크고 넓은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걸 닮은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