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그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호주 국적에 나보다는 2살 연상이고, 꽤 일찍 데뷔를 피아니스트이다. 지금은 예술흥행비자(E-6)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 남자친구이다.
한나는 사람들이 의외라고는 종종 말을 하지만, 내가 한나를 10년 이상 본 친구라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한나는 문화생활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나랑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공연’이 있다고 해서 티켓도 어렵게 구했다.
내가 원하는 곡은 없어서 아쉬웠다. 나는 ‘막심 므라비차의 쿠바나’를 좋아하지만, 그 곡이 수록되지 않아서 아쉽긴 하여도 피아노의 선율은 항상 아름답다.
협주도 하는 아름다운 광경에 황홀함에 취해있었다.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큰 홀에 소리가 가득 퍼졌다.
한 남자가 독주를 하려는 듯 걸어오자 사람들은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드디어 ‘피아노공연’에 <메인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었다. 중간 자리였지만, 큰 키에 소년미가 있는 남성이 인사를 하고선, 피아노를 연주를 하자 다른 사람 같았다.
‘무슨 곡이려나’ 하면서 안내책자를 살펴보았다.
⌜베릴 루빈스타인 편곡, 거슈윈(G.Gershwin)의 Summer Time.
*오페라 ‘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1막에 등장하는 자장가.⌟
라고 친절하게 설명이 쓰여있었다.
부드럽고, 한 편으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곡을 보면서 어릴 적에 피아노를 좀 쳤던 나이지만, 곡에 빠져들면서 겸손해지고, 온전히 선율에 날 맡겼다.
공연이 끝나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고, 그는 인사를 하고 퇴장을 했다.
우리도 여운을 느끼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힐링이야”
“그러네 Summer Time 처음 들어보는데 되게 여운이 남네.”
“끝나니까 배고프다.”
“나도. 냉메밀 먹을래? 연지네 근처인데 맛집이래.”
그렇게 연지도 퇴근하고, 합류하여 저녁으로 냉메밀을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을 입고나선, 침대에 누워서 노곤노곤함을 느끼며 있었다. 눈치도 없는 내 스마트폰은 벨소리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서아야 소개팅할래?”
“갑자기? 연지 너 또 수업 끝나고 소개팅해준다는 것 나한테 던지는 거지?”
“아.. 들켰네.. 끊지 마!”
머쓱하게 웃는 연지는 내가 끊을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
“아- 왜 나야? 네가 가면 되잖아-”
살짝 언짢아진 나는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내가 가려고 했지 그런데… ”
말끝을 흐리자 이성을 찾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했다.
“응 네가 나가려 했는데?”
“회원님의 아는 동생이라는데 외국인이야”
“엥? 그게 내가 가야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그건.. 네가 나보다 영어를 잘하기 때문이지! 너여도 괜찮다는데 도와줘라...”
너무 해맑게 말하는 연지의 목소리를 듣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이었다.
“그래, 뭐 나가서 사귀라는 것도 아닌데”
“ 오.. 그러면 네 사진이랑 톡 아이디 보낸다? 톡 아이디랑 이번주 일요일 만나는 장소 링크 보내놓을게. 넌 내 은인이야 은인!”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연지에 모습에 그래도 도움을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 잠깐! 내일이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였다.
“응 그러니까 은인이지, 그래도 내가 얼굴은 봤는데 잘생겼더라.”
연지는 나에게 당당하게 말을 했다.
‘잘 생겼다고?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잘 생긴 게 좋지.’
“에휴.. 알겠어 오늘 야식 먹을까 했었는데..”
나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스크 팩을 꺼내서 얼굴에 붙였다.
“친구 한 번 선심으로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야식은 미뤄두시죠.”
“살다가 내 인생에 소개팅으로 외국인을 받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영어로만 말해야 돼?”
혹시나 해서 질문을 하니 빛에 속도로 연지는 대답을 하였다.
“응. 그래도 피아니스트로 극단에 있어서 그래도 한국말은 조금은 알아듣는다네.”
그래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다.
“피아니스트?”
“응 피아니스 트래! 사진 보내놨어 봐 봐”
“나 이 사람 알아! 오늘 이 사람 공연 다녀왔었는데?”
누군가 대본을 짜준 것 마냥 갑자기 오늘 봤던 남자랑 소개팅이라 나는 기분이 매우 묘해졌다.
“이런! 세상 참 좁네 내가 물어보니까 그래도 한국어 수업받는대”
깔깔 웃으며 이제는 자기 일 아니라는 듯 연애프로그램 시청하듯 혼자 설레어하는 모습이 조금은 얄미웠다.
“그러면 네가 가지?”
“난.. 영어를 잘할 자신이 없어”
“너 지금 조금 밉상이야.”
난 뾰로통하게 말을 했다.
“파이팅! 내가 나중에 거하게 식사대접 해드릴게.”
장난스럽게 내게 이야기를 했다.
“이게 맞나...??”
마스크 팩을 떼어선 쓰레기통에 넣고, 톡톡 두드리며 흡수를 시켜주고 있었다.
“이제 신사분 하고 기본적인 톡은 하셔야죠. 고마워 사랑해 뿅!”
내가 뭐라고 할까 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어색하게 톡을 하기 시작을 하려고 톡을 들어갔다.
‘안녕하세요.’라고 정말 교과서적으로 톡이 와서 나는 영어로 대화를 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서로 흔히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다가 찾은 공통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식, 영화취향, 좋아하는 음악 등등.
톡만 해봤지만, 좋은 느낌이 들었고, 일찍 잠이 들었다.
알람소리 덕분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고데기도 하고, 풀메이크업에 시폰 원피스를 입고선 약속장소로 향했고, 그는 미리 와서 앉아있었다.
그를 가까이에서 보니, 어제의 모습이 보이는듯한 느낌이었다.
큰 키에 하얀 피부 파란 눈동자.
'우리나라 사람들만 보다가 외국인과 소개팅이라니, 신기해'
“오늘 옷이 되게 잘 어울려요”
그는 준비해 온 말이었는지 또박또박 말을 하려고 애를 썼다.
“고마워요.”
그 모습이 귀여울 뿐이었다.
준비한 말을 다 하고 나니, 침묵이 흐르기에 나는 영어로 ‘커피 뭐 마실래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너는 무슨 음료를 마시고 싶어?”
“같은 음료로 할게”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키호스크에 가서 주문을 하고 돌아왔다.
“혹시.. 그 결혼생각은 있어?”
그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결혼?”
나는 갸우뚱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를 하고 싶어”
훅- 들어온 질문이었다.
다행히 커피가 나와서 당황한 나는 일어나 커피를 들고 자리로 왔다.
커피를 앞에 놓아두며 작약 같던 우리는 어느 순간 편해져 점심만 먹고 헤어질 것 같았는데 저녁까지 먹고, 산책까지 하게 되어 쭉- 공원을 걷다가 그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 알아가 볼래? 지금 대답 안 해도 괜찮아!”
작약 같은 그는 살짝은 붉어진 얼굴로 내게 용기 내어 이야기를 했다.
“그래 알아가 보자”
무슨 용기였는지 승낙을 해버렸다.
그날로 내 첫 Summer Time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