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빌라 5층 중에서 2층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 집에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옥상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그런 나인데, 나는 두 번 만에 옥상에 올라가 스스로 떨어졌다ㅡ
내 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그날은, 외롭고 차가운 새벽이었다.
죽으려고 떨어진 건 아니다.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처절하게..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선택을 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너 살래? 죽을래?" 이렇게 물었다면 당연히 "살래"라고 답했을 것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를 괴롭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을 몰랐고, 도움도 청하질 못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려고 하면 허공에 흩어질 거 같았다. 도와달라는 말이 목에 걸려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늘 괜찮아야 했고 아무렇지 않아야 했고 웃어야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나에게 남은 건 폐허 그 자체였기에, 나는 그 폐허 속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아무런 대항할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괴롭히는 존재들로만 느껴졌고, 당장 내일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현실이 슬펐다. 썩어 문드러져 껍데기만 남아 있는데도 나는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안 괜찮은데... 나 정말 힘든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여기서 떨어져. 그러면 편안해져.. 이 가족에서 너만 없으면 그저 행복하고 평범한 가족이 돼. ' 이런 말만이 맴돌았다.
나는 지극히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싫어한다. 내가 만약 차도에 뛰어든다면 누군가는 그 충격과 트라우마로 평생을 살겠지 싶어 생각이 난 게 옥상이었다. 첫날, 옥상에 올라 난간에 앉아있었을 땐 길을 지나던 아저씨가 옥상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어서 내려오라며 소리쳤다. 놀란 나는 후다닥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옥상에 올랐을 땐,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오늘따라 달은 왜 이렇게 밝은 건지... 달이 부럽고 너무나도 미웠다. 나의 지옥은 달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은 고고하게 밤하늘에 떠있으면서 나의 세계를 짓눌렀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픈 눈을 하고 낑낑 울었다. 엉엉 울어야 하는데 엉엉 우는 법도 잊어버렸다. 그러고는 옥상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옥상의 한 면의 난간 아래에는 아스팔트 벽돌이 세워져 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저 벽돌에 부딪혀 아플 것만 같았다. (차라리 여기로 떨어졌다면 충격이 흡수돼서 덜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면을 보니 아래엔 아무것도 없고 그냥 바닥이었다. 거기는 필로티 주차장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지나는 길과 주차장 사이의 공간에 퍽.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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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몸을 던져 떨어진 건 아니다. 나는 난간에 천천히 앉았고 그 난간의 봉을 잡으며 아래로 매달려 힘이 빠질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쥐고 있다가 힘이 빠져서 떨어졌다. 마치 1층 정도의 높이에서 담을 넘는 것처럼 머리부터가 아니라 다리부터 일자로 떨어졌다ㅡ 나는 오른쪽 발목 골절, 왼쪽 무릎골절과 대퇴골 개방형 골절, 골반골절, 갈비뼈골절, 턱뼈 분쇄골절, 거의 대부분의 치아상실의 상태가 되었다. 다행인 건 머리와 척추를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고, 유일하게 멀쩡 한 건 팔과 손이었다.
온몸이 부서졌는데도...
이상하게...
아. 프. 지. 가. 않.았.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게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마음이 아프면 몸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엄마... 엄마... 엄마..."
하며 부르짖었다. 이것이 마지막일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말 밖엔 나오지 않았다.
엄마...
내가 지독히 사랑하면서도 내가 지극히 싫어하는 존재...나의 행불행의 집합체이자 나의 치부이며 나의 소중한이...
결국 나는 엄마에게로 회귀했다. 엄마가 달려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너무나도 미안했다.
나는 다행히 떨어지고도 몇 분 동안은 의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그 찰나의 순간에 엄마를 떠올렸다.
나는 부서져 피와 함께 섞여 나오는 치아를 움켜잡았다. 정말이지 꼭... 쥐었다. 혹시라도 운이 좋다면 다시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바보같이. (엠뷸런스를 타고 갔을 때도 나는 이 손을 꼭 쥐고 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양가의 감정이 들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음에도 나는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운 좋게 옆 빌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지나면서 나를 발견했다. 그분은 내가 그 당시에 뉴스가 많이 되던 '퍽치기'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찰과 소방서에 연락을 했다. 마음이 따뜻했던 그분은 피를 많이 흘려 오들오들 떨며 추워하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점점 정신이 흐려져 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구급대원이 다가왔다. 나의 상태를 보더니 옆집 아저씨에게 퍽치기가 아니라 떨어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정말이지 부끄러웠고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신이 나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희망과 함께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나는, 이 얽혀 있는 기억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 볼 생각이다.
그 순간을 온전히, 그야말로 알알이 마주하며 내 안의 어린아이를 성장시켜 가 보려고 한다.
이 기록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혹여 기회가 닿아 누군가의 마음에도 스며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의 스며듦이라면 나는 더없이 기쁘고 벅찰 것이다.
- 이제, 나는 나의 낙인과 트라우마에 대해 용기 있게 쓸 준비가 되었다. -
얼마나 힘들고 아팠니? 정말 많이 무서웠겠다... 그렇지...? 너의 그 마음을 물어봐 줄 사람이 없었지? 외로웠을 거야... 사무치게 외로워서... 외로움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 너의 표정도 굳게 만들고 너의 감각도 굳게 만들었겠지...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했어? 네가 살고 싶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 지금은 어때? 너의 마음이 궁금해... 지금 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옆에 있다면 토닥여줄 거야... 그리고 네가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괜찮다"라고 속삭여 주며 등을 쓸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