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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D-340] 프로 리스너

by Mooon

D-340. Sentence

프로 리스너


IMG_1689.HEIC @idas 총동창회

지난주 금요일, 처음으로 대학원 총동창회에 다녀왔다. 동기가 회장이 되면서 10년 만에 전화가 왔다. “이번엔 꼭 나와라.” 알겠다고 했지만, 가는 날까지 망설였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걸 불편해하는 편이다. 그래도 요즘은 일부러 불편한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서, 강을 건너듯 마음을 다잡고 총동창회 장소로 향했다.


준비위원회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느껴지는 자리였다. 나는 그저 회비 내고 앉아 즐기기만 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입장하자마자 이름표와 함께 스티커가 주어졌고, 벽면에는 각자 원하는 문구를 붙일 수 있도록 여러 문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 가지를 고를 수 있었는데, 나는 “디자인이 뭐예요?”와 “돈을 복사하고 싶어요(진심으로).”를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회장 동기가 내게 스티커 하나를 건넸다. “누나한테 딱 맞는 문구 있어요. 이거.” 스티커에는 ‘프로 리스너’라고 적혀 있었다.


프로 리스너. 그 단어가 참 낯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솔직히 의외였다. 나는 오히려 듣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기준이 뚜렷하고, 선이 명확한 편이라 ‘경청’이라는 단어는 늘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라도 ‘듣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오랫동안 강단에 서왔기에 나는 늘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가르치는 일에 익숙하고, 설명하고 정리하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남편과 싸울 때마다 그 습관이 문제였다. “너는 꼭 나를 가르치듯 말해.” 남편의 말이었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너랑 얘기하면 네 첫째 아들이 된 기분이야.”라고 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 말이 내 마음 한가운데를 찔렀다. 나는 정말 듣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날 이후로 ‘듣는다’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말을 쓸데없이 무겁게 받아들이지도,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지도 않는 것. 말의 무게를 재고, 그 말이 놓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 그리고 그 마음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일. 그것이 진짜 경청 아닐까.


어제 휴먼브랜딩 수업 중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조금 다르게 앉아 있었다. 늘 ‘평가자의 귀’로 듣던 발표였지만, 이번엔 ‘사람으로서의 귀’로 듣고 싶었다. 한 명 한 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들으니 피드백이 달라졌다. 학생의 말에 내 이야기도 조금 더 솔직하게 얹을 수 있었고, 그제야 대화가 오갔다. 학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말하는 나’가 아닌 ‘듣는 나’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프로 리스너. 여전히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그 단어를 내 이름 옆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오면 좋겠다. 듣는다는 건 어쩌면 인생 후반부의 숙제 같은 것 아닐까. 50을 바라보는 지금,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오늘은 괜히 가을 하늘이 보고 싶어 차를 몰았다. 운전하는 걸 즐기지도 않지만, 혼자 운전하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다. 때론 그 고요함이 고프기도 하다. 오늘이 그랬다. 가을이 절정을 달려 겨울로 향하듯, 나의 계절도 조금씩 무르익어가고 있기를 바라는 저녁이다.



내 안의 한 줄

듣는다는 건, 상대의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마음의 기술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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