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1]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D-341. Sentence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오늘은 자그만치 수능날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니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인지 수능날이 상관이 없어지면서 수능날은 그저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신호이자 엄청 엄청 추운날로 인식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번 수능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교회에 예뻐하는 아들들이 수능을 치뤄서이기도 하고, 중2에 올라가는 첫째아들이 5년 후면 고3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내 아들이 고3이 된다는 말은 나 또한 그만큼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 요즘은 어디든 앉기만하면 잠이 쏟아진다. 오늘도 학교로 향하는 KTX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건지, 무언가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냐고, 이제는 좀 워워하라는 몸이 보내는 경고인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은 몸이 예전같지않다라는 말이 내 얘기같다.
돌아보면 늘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나 또한 내가 노는 것까진 아니지만 한가하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고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선택했던 나는 돈과는 상관없이 늘 분주했다. 사람 하나를 성인으로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예전엔 알 길이 없었다. 티안나는 수많은 챙김과 내가 해야할 일들을 함께 병행한다는 것은 친정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청 오래전 얘기지만, 무심결에 남편이 던졌던 말에 혼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오늘은 장모님 모시고 좋은데 가서 브런치 먹고 바람쐬고 와.’라는 말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아주 예전 시어머님께서 ’요즘 많이 바쁘지? 깍두기 담궈놨으니 내일 오전에 가지러 올래?’라고 하셨을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시어머님은 나의 삶을 잘 모르시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아는 남편마저도. 고생하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맛있는 브런치 먹고 바람쐬고 오라는 말이 왜 충격적이었을까. 정말 좋은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한 이야기였을텐데 내가 너무 예민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나는 두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 어떻게든 해야할 일을 처리하느라 점심을 스킵하거나 떡이나 고구마, 카페디저트로 대신했었다. 분단위로 움직였지만 해야하는 일에 비해 시간은 부족했고, 두 아들의 엄마로도 할 일은 셀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과 상황을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쉴 수 있고, 조직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니 자유롭다는 남편의 생각이 어떤면에서 나를 참 쓸쓸하게 했다.
지나고생각해보니 나의 상황과 마음을 나만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음을 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당연히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안일한 욕심. 그렇다면 나는 남편의 상황과 마음을, 다른 이에 대해 그만큼 알고 공감하고 있나? 할 말이 없어진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떤 면에서 사치다. 그저 내가 분별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하면 끝. 심플하다. 복잡하게 감정을 섞어서 왜곡된 관계와 시간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가을날이 좋구나. 오랜만에 강의실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판단미스였다. 저녁은 조금 더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내 안의 한 줄
내 마음을 먼저 돌보면, 관계의 온도도 달라진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