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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만들어야 한다

[D-339] 제가 만들어 봐야죠

by Mooon

D-339. Sentence

제가 만들어 봐야죠

IMG_1742.PNG @신인감독 김연경

결국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신인감독 김연경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지도 몰랐다. 평소에 김연경 선수를 좋아하기에, 아마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녀의 영상을 조용히 내게 건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덥썩 잡았다. 오늘 아침 수업을 위해 지하철에 올라타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일들을 적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대학 강의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사람, 새로운 협업팀을 이끄는 대표.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자고 싶다는 생각을 이렇게 자주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어젯밤에도 아침 수업 준비를 해야 했지만, 몸이 도저히 버텨주지 않아 새벽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간신히 수업 준비를 마쳤고,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to do list를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하나씩, 천천히 하자.” 그러나 다짐과 함께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카페에서 좋아하는 건강김밥을 먹으며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갔다. 이번 달 내로 들어야 하는 필수교육 관련 문의, AI 프로젝트 추가 참여명단 전달, 함께 일하는 동생과의 최종보고서 회의, 졸업전시 관련 공지, 학생 문의 답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들 속에서 문득 시계를 보니, 오후는 이미 깊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학교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시댁이 문득 떠올랐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려 간식거리를 사 들고 들렀다. 어머님은 안 계셔서 현관문에 걸어두고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안에서 그냥 쉬고 싶었다. 무심히 유튜브를 켰고, 그때 알고리즘이 ‘신인감독 김연경’을 내게 보여줬다. 주전 선수들이 빠지고, 교체 선수도 없는 상황. 프로팀과 맞서야 하는 경기.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판이었다. 그때 김연경 감독이 말했다. “제가 만들어 봐야죠.”


그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요즘 나는 ‘내가 만들어본다’는 마음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돌파하고, 뚫고 가고, 감당하려는 마음이 자꾸 작아지고 있었다. 위축된 나를 버텨온 시간들. 오늘 휴먼브랜딩 수업을 하며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강의를 하며 이렇게까지 사적인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이었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고, 그 진심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들의 고민은 과거 나의 고민이었고 지금의 나의 고민이다. 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에. 그 과정을 조금 더 덤덤히 감당하길 바라는 마음, 선생이자 선배로서의 마음이 함께 했다.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한다. 결국, 내가 헤치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라던 마음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하루를 쌓아가는 일. 지금 나에게, 그리고 나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용기일 것이다.



내 안의 한 줄

결국 만들어가야 한다. 그게 나의 일이고, 나의 삶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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