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발행했던 글인데, 연재 형태의 브런치 북을 만들다 보니 체계상 필요해서 이곳으로 옮겨 왔습니다(이전 글은 삭제했습니다).
2023년 여름 27년째 만남을 이어 온 독일 노교수 부부가 독일 여행 중인 나를 자신들의 동네 맛집으로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고, 덕분에 독일의 아주 작은 마을의 (어쩌면 그 마을에 하나밖에 없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 당신들이 살고 계신 마을은 독일 서쪽의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주에 있는 "바이젠하임 암 베르크(Weisenhem am Berg)"란 마을인데, 9.21 km² 면적에 17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당신들께서 나를 초대한 곳은 호텔-레스토랑-카페를 겸하고 있는 "Speeter"라 곳인데, 보다시피 야외 테이블은 손님들로 그득하다.
이곳 팔츠 지방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질 좋은 와인생산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Speeter 또한 자신들의 매장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음을 코르크마개를 따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곳 Speeter의 특징 중 하나는 낮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인데, "배고프세요(Hunger)? 그래도 기다리세요. 식사는 17시부터 가능해요"라고 써 놓은 입간판이 재미있다. 마을 주민이라고 해봤자 1700명 남짓이고, 그렇다고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도 아니니 점심과 저녁 모두 장사를 하는 것은 계산이 안 서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이곳으로 초대하신 독일 노교수(1940년생이시니, 83세)의 이야기로는 원래 팔츠(Pfalz) 지방에서는 예전부터 레스토랑이 저녁에만 장사를 했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그런데 테이블에 앉아 나이프와 포크를 감싸 안고 있는 냅킨에 쓰여 있는 짤막한 문장과 만나는 순간, 그야말로 참담함을 맛보았다. 왜냐하면 냅킨에 적혀있는 짤막한 문장 속에 듣도 보도 못한 독일어 단어가 무려 3개씩이나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최근에 독일어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있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독일의 전문학술서를 7권씩이나 번역해서 출간했던 나인데, 어찌 이럴 수 있지?라는 자괴감이 또 한 번 나를 엄습했다. 그런데... 나를 이곳으로 초대한 노교수 왈 "그 세 개의 단어는 모두 팔츠(Pfalz) 지방 사투리이어서 독일 사람들도 이 말을 이해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노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데, 당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 세 개의 단어는 각기 괄호 안의 뜻이라고 한다.
Drugge(trockne: 마른)
Worschd(Wurst: 소시지)
Dorschd(Durst: 목마름)...
그렇다면 냅킨에 쓰여 있는 글씨는 "소시지(Wurst)가 있든 없든 간에 마른 빵은 목마름만큼이나 심히 나쁘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 된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독일어에도 사투리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저 발음상의 차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형태의 단어가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독일어의 사투리가 생각보다 심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둘을 의미하는 표준 독일어인 zwei를 zwo라고 했었던 것이 떠오른다.
이번 글은 팔츠 지방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겪었던 독일어 사투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레스토랑을 찾았으니 음식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하여 이곳 Speeter의 음식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곳에서 만드는 수프 가운데 옛날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법 그대로 만든다는 감자 수프를 맛보았다. 할머니의 감자 수프(Oma's Grumbeersupp)라는 메뉴 이름이 왠지 모를 정다움을 주어서 말이다.
아마도 옛날 할머니가 손이 크셨나 보다. 엄청나게 큰 보울에 담겨 나온 수프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감자가 많이 들어가서 맛도 훌륭하다. 가격은 겨우 6,50유로(9,000원 정도).
그리고 이것은 내가 주문한 생선 필렛. 커다란 생선 두 조각에, 또 엄청난 양의 감자요리가 덧붙여 있다.
집사람과 딸아이가 주문한 메뉴는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내 옆자리의 노교수가 주문한 음식은 사진을 남기기는 했는데, 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