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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Sep 26. 2021

8월의 장미

끔찍했던 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분 날이었다.

그렇게 끔찍했던 여름이었는데, 막상 간다고 하니 서운하고 심술이 났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 물으면 늘 여름이라 답했던 나에게 그해 여름은 숨이 막혔고 불쾌하고 우울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의 지속이었고, 식욕을 제외하곤 그 어떤 의욕도 들지 않아 안에서부터 점점 부패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다간 진짜로 어딘가 땅굴을 파고야 말겠다 경각심을 느낀 어느 날 저녁 산책이라도 하려 집 밖을 나섰다.


동네의 하천길을 따라 걸었다.

지정된 노동량과, 식사량을 착실히 마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러닝을 하고, 연애를 하겠다며 어지러이 도보길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그 치열함에 금방 멀미가 나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샛길로 빠졌다.

길이 굴곡지고 풀이 막무가내로 나있는 사람 손이 닿았다 거둬진 길이었다.

다만, 더 큰길로 나가기 위해 그 길을 지나쳐야만 하는 자전거 무리들이 “지나가요”라는 무례한지 상냥한지 판단하기 애매한 경고를 날리며 지나갈 뿐이었다.


한바탕 동호회의 자전거 무리가 지나간 후, 비교적 느린 자전거 한 대가 조용히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에 캡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그 남자의 헐렁한 면 티 안으로 들어 흰 티가 펄럭. 펄럭. 나부꼈다. 자전거의 낮은 핸들을 잡고 허리를 숙인 모습에 그의 얇은 등허리가 강조되었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광복절을 앞두고 양화교 위에 성의 없이 계양된 누런 태극기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력이었다.


남자의 자전거가 저 앞 코너를 돌았겠다 싶을 즈음에 앞쪽에서 충돌음이 들렸다. 그 길엔 오직 나뿐이었고, 그 소리를 들은 게 나만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앞쪽으로 걸었다. 다음 가로등 불빛 아래에 남자와 자전거가 쓰러져있었다. 난간엔 ‘충돌주의’라 써 붙여져 있었다. 남자는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깜깜한 밤이었고, 하필 가로등 아래에 쓰러져, 작렬하는 가로등 불빛에 시야가 검어졌다 하얘졌다. 가까이 다가서자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푹 떨군 채 미동이 없었다. 남자 옆에 떨어진 파란 캡 모자는 충돌의 세기를 가늠하듯 챙 부분이 우그러져있었다. 그의 무릎인지 얼굴인지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아까의 흰 면티를 물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기절한 듯했고, 그의 콧구멍 가까이 귀를 대자 미세하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구급차 내부의 서늘한 감각. 응급실 의사의 기름진 머리, 낡은 슬리퍼를 신고 황급히 달려오던 여자, 그 후의 기억들은 그렇게 파편으로 남았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보호자’라 불려보았다. ‘보호자분은 여기서 대기하세요’ 하는데 나를 말하는 것인가 했다. 잠시뿐일 그 직함에도 몸이 뻣뻣해졌다. 남자의 곁에 있는 게 나뿐이라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내 남자의 누나가 도착했고 남자는 안정을 찾았다. 평소에 빈혈이 심해 그의 누나가 자전거 타기를 만류했음에도 더위가 가셨다는 생각에 무리해 자전거를 탄 모양이었다. 빈혈 증세로 머리가 도는 순간 자전거도 중심을 잃었던 것이다. 남자의 누나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례를 하겠다는 걸 막무가내로 거절하고는 응급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그 밤 내내 도망쳐야겠다고 수십 번을 생각했었다.

병원 밖은 어느새 새벽이었고, 하늘은 보랏빛이었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의 찬기가 몸을 파고들자 졸음과 피로, 역시 밖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무거운 발걸음마다 후회가 찍혔다. 내가 왜 그렇게 황급히 그곳을 뛰쳐나왔을까, 내가 그 남자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쩌면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늘 그런 식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순간에 간절히 발을 빼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고야 만다.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어색하게 추켜 세울까 봐, 아님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 내가 김이 새 버릴까 봐, 서로 어쩔 줄 모르며 눈치만 보게 될까 봐, 혹은 그들이 어디서 뭐하는 누구시냐고 물어오기라도 할까 봐. 완벽한 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에  더 이상의 전개가 지속되는 것을 애초에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대받는 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내게 기대란 늘 실망과 함께하니까.


누군가가 코앞에서 피를 철철 흘린다면, 흰 것이 붉은 것으로 온통 물 드는 광경이 벌어진다면, 그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떠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사고였고, 나는 그것을 방관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조차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다. 누구나 응당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 중에 대단한 일이란 없다. 모든 건 네 공이 아니다. 네 탓은 많지만 네 공은 있을 수 없다.


지독한 자격지심이 나를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누군가의 기대란 것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태. 누군가의 ‘은인’ 혹은 ‘고마운 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그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할 것이라는 강박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이 만든 ‘나’라는 감옥에 갇히는 일이 이미 수감 중인 줄도 모르고 죽도록 싫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때 만개했던 장미들이 담장마다 보기 흉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이 흉한  장미 덤불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여름은 끝났는데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이 지독한 더위는 도무지 끝을 맺을 기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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