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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08. 2020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큰 손들

[마음의 주체] '정치인 이해찬' vs '이해찬 세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은 누구일까? 재벌, 스포츠 스타, 연예인 등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건물주'라는 점에서 큰 손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중에는 한두 채의 건물이 아닌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한 그야말로 '거리주'도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부동산 시장 내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큰 자본금을 굴리는 이들이 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넘쳐흐르며, 더 넓은 부동산을 구할 요인도 충분하다. 게다가 시간 또한 이들의 편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금의 확충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러나지 않지만, 욕망을 뚜렷하고 명료하게 표출하여 부동산 시장을 흔드는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활동할 것이며, 대한민국 역사상 어느 시대든 활약했다.


2020년 현재 기준으로, 이들은 20여 년 전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수모를 겪기도 했다. 30대 후반을 장악한 이들, ‘이해찬 세대’다. 


필연적 악연이란 이런 걸까?


정치인 이해찬과 '이해찬 세대' 간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듯 살얼음 판이다.

지지율은 사실상 역전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무응답자의 성향은 정권에 대한 긍정보단 부정적 성향이 강하다는 주장은 학자들 사이의 찻잔 속 태풍이 아니라 점심시간 회사 앞 카페 탁자를 덮는 침방울과 같이 가까이 있다.

부동산 정책, 성추행 의혹 사건 등 드러난 문제에 대한 불만이 폭주한 듯 보이지만, 이는 기름을 부은 것뿐인 것 같다. '이해찬 세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인 이해찬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과거의 간판 덕분인가?


정치인 이해찬은 지난 1998년 교육부 장관을 꿰찼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 심지어 무시험으로.

이에 발맞춰 야간 자율학습, 월말고사,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는 개혁(?)을 단행했다.(교육계의 반발로 일부는 실현되지 않았다.) 더불어 체벌 가이드라인도 정해 배포했다. 

이에 당시 고등학교  1학년(1983년생 위주)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등 이전 고등학생들에 비해 여유로운 학업생활을 했다.  다만 대학에 가기 위한 특기 한 가지를 위해 배회하고 방황했다.


입시에서 내신 반영 방법은 '수우미양가'에 따른 절대평가 방식이 대세였다. 발 빠른 학교들은 점수를 마구 퍼주기 시작했다. 수행평가도 악용했다. 중간고사 문제가 어렵게 출제돼 학생들 점수가 낮게 나오면 중간고사 반영 비율을 낮추고 수행평가 비중을 높여 점수를 보전해주는 식이었다.


2001년, 정부가 '하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홍보하며 제시한 수시 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다. 이해찬 세대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정부가 조성한 분위기와 달리 수시로 갈 수 있는 자리는 얼마 없었다. 예체능이나 컴퓨터 특기자 등 원래부터 특기를 살려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던 사람 말고는 진짜 뛰어난 무언가가 없다면 결국 국영수 위주의 기존 공부를 해야 대학 진학에 유리했다.


정부에 속았다는 생각도 잠시, 정부의 홍보와 달리 수시 모집으로 진학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였기 때문에, '이해찬 세대'는 할 수 없이 수능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내신 점수를 퍼준 학교의 학생이나 예체능 등 특정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수능에 올인해야만 했다. 


수능 결과는 참혹했다. 전체 집단 기준 문과는 무려 98.2점, 이과는 91.3점 폭락했다.

온 세상은 ‘이해찬 세대’를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고 불렀다.

언론은 1983년생을 '이해찬 1세대'라 불렀고, 1984, 1985년생을 각각 2, 3세대라 불렀을 정도로 파장은 한동안 지속됐다. (수능 평가를 등급제로 했던 1989년생 고3 시절까지 수시와 정시에 대한 실험은 계속돼 1989년생까지는 '범 이해찬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이해찬이 국무총리를 지낸 시기(2004~2006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인 이해찬은 이렇게 평했다.

“수능 내신 면접을 다양하게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 “방향은 옳았다.” “공부 못 했던 일부의 넋두리고, 학력 저하는 없었다.”


그로부터 20년 후(2018년), 


'이해찬 세대'는 산업의 역군으로 자리 잡았다. '일 시킬 맛이 난다'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연봉 6천만 원 전후가 상당수였으며 마이너스 1억 원까지 끌어 쓸 수 있는 사회적 신용도도 따라붙는 경우도 많았다. 주택을 사든, 창업을 하든, 뭐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레벨업 했다.


정치인 이해찬은 거대 여당의 수장이 됐다. 운전기사 딸린 차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했다. 

부동산 정책을 특히나 밀어붙였고, 이를 위해 토지공개념, 수도이전, 개헌 등의 카드도 만지작했다.

취임하자마자 던진 메시지는 그때처럼 명료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위해 공급 크게 확대해야 한다."면서도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정부에 요청"하는 등 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후 3기 신도시, 수도권 공공임대 확대 등 공급 정책이 나왔지만, 세금/대출 등 규제 정책은 더 빠르게 옥죄었다.


아뿔싸, 상황이 이런데도 '이해찬 세대'는 직장에서 레벨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차마 아파트를 구매하지 못한 채, 토끼 같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전세살이 맞벌이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기만 했다.

“이렇게 성실히 살면 언젠간 청약에 당첨될 수 있겠지.”하는 막연한 꿈만 키우고 있었다.

그 사이 청약 당첨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고, 집값은 (레벨업으론 닿을 수 없는) 신용 범위 바깥으로 밀려났다. 


임기 3년 차의 거대 여당 대표 이해찬은 "서울이 그런 천박한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현재 서울의 모습이 천박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마음을 내비쳤다. 부동산 시장의 큰 손들은 “어떤 정책이 서울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여당 대표 이해찬이 서울을 천박하다고 표현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정당은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의 집값 문제 및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며 “앞뒤 문맥은 생략한 채 특정 발언만 문제 삼아 서울을 폄훼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평했다. 


20년 전엔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평가다.


이제야 '이해찬 세대'들은 깨닫는 듯하다. 3명만 모여도 부동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좌절하곤 '스스로 손목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말을 내뱉곤 한다. 스스로 손을 잘라버려야 한다니, 투표 결과에 대한 자책이었다. 큰 손들이 정치인 이해찬의 정당을 등지고 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이제야 부들부들 떠는 이들. 그러면 뭐하나, 5%씩 따박따박 오를 전셋값을 메우기도 벅찬 상태다.


내신점수 낮아, 공부시간 적어, 수시 is 뭔들?, 수능에선 n수생에 학살.

청약점수 낮아, 업무시간 많아, 대출 is 뭔들?, 청약에선 5060 세대에 학살.


어리둥절 어리바리

'단군 이래 최저 학력' + '집도 못 사는', ‘대한민국 부동산 큰 손들’이 손목을 자르겠다며 자책하고 있다. 마음이 부서진 '이해찬 세대'의 반격이 볼만 할 것 같다.



출처: 위키백과, 네이버 뉴스 등 ‘이해찬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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