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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7. 2022

하교길의 참새방앗간, 문방구

초등학생 때 하교길에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는 마냥 늘 들르던 곳이 있다. 바로 아파트 단지의 문방구다. 엄마가 일해서 바빴기에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문구점에 들렀다가 놀이터에 가서 진탕 노는 것이 내 일과였다.



내가 자주 들르던 문방구는 우리 엄마 아빠뻘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작은 공간에 어찌나 물건들이 오밀조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는지, 천장까지 주렁주렁 물건들이 매달려 있었다. 색연필, 크레파스, 종합장, 찰흙, 독수리가 그려진 연까지. 초등학생의 라이프스타일 상 필요한 건 다 있었기에, 공간은 작았지만 대형마트 부럽지 않았다.



문방구의 한쪽 벽면 바닥 쪽에는 간식들이 즐비했다. 엄마가 웬만하면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소위 불량식품들이었다. 어른들이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법. 나와 친구들은 가지고 동전지갑 담긴 소박한 용돈을 불량식품에 기꺼이 지불했다. 어른 없이 내가 먹을 것을 내가 결제하는 짜릿함. 몸은 초등학생이었지만 마음은 마치 중학생 언니가 된 듯했다. 툭하면 소화가 안 되는 지금과는 달리, 초등학생 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점심에 급식을 먹었는데도 하교하는 시간대인 2시~3시 무렵에는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렸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문방구에 들렀다.



나와 늘 같이 다니던 내 친구는 쥐포를 좋아했다. 한 개씩 개별 포장되어 있는 쥐포였는데, 달큰짭쪼롬한 양념이 듬뿍 발라져 있었다. 개당 200원 정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출처 : 쿠차

내가 좋아하던 것은 맥주 사탕이다. 맥주 모양에 막대가 달려 있는 막대사탕이었다. 사탕을 한 입 빨면 혀를 톡 쏘는 탄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묘하고 달달한 보리의 맛이 났다. 이것도 2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출처 : 쿠차

그리고 문방구에는 한 개를 사서 친구들과 쉽게 나눠먹을 수 있는 간식이 있었으니. 바로 아폴로다. 아폴로를 안다면 당신은 최소 30대 이상일 것으로 생각된다. 작은 빨대처럼 생긴 틀 안에 파스텔톤의 사탕이 채워져 있었다. 작은 빨대의 끝을 물고 이를 이용해서 쭉 당기면 달달한 사탕이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아폴로는 한 봉지에 300원 정도로 다른 불량식품들보다 조금 비쌌지만, 한 봉지에 10개 넘게 들어 있고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어 300원 정도는 기꺼이 냈다.

출처 : 쿠차


신혼집으로 터를 잡은 동네에서 6년 간 살고 있는데, 1년 전 즈음 동네에 있던 문방구 두 곳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모두 문을 닫았다. 문방구를 보면서 '요즘도 이런 문방구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릴 적 내가 생각하던 문방구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좁은 공간이 터져나갈 것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물건들과 불량식품들이 즐비한 것까지 똑같았다. 문방구 두 곳은 초등학교 주변에 위치해서 하교하며 들르는 아이들을 자주 봤었다. 지나가며 보기에는 바글바글 아이들로 붐비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안 맞았으리라. 모바일 쇼핑에 익숙한 엄마들이 아이들 준비물을 모바일로 해결하니, 문방구에서 실제로 팔리는 물건들은 하교길 아이들의 불량식품이 거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내 어린 시절 참새방앗간이었던 문방구는 이제 멸종의 단계를 밟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 단지에 몇 개씩 있었던 공중전화가 이제는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사회는 더 빠르고 편리하게 변해가기에 문방구의 멸종은 불가피하다. 점점 더 편리해지는 사회가 반가우면서도 옛 추억이 담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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