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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May 26. 2020

첫 한겨울 밴라이프

#28

처음으로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던 건 영국에서 밴을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터네이터(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해주는 모터 장치)가 고장 났을 때였다. 얼터네이터를 교체하고 나서는 문제가 없었고 한번쯤은 방전될 수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경찰이 빨리 차를 빼라고 재촉을 하는 와중에 다행히 옆에 있던 캠핑카의 도움으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왜 방전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밴을 정박해 뒀을 때에는 전조등을 켜 둔다거나 운전석 실내등을 끄지 않는 등의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박집 앞 주차장에 두 달을 세워 두었다가 사랑이를 입양하러 갈 때에도 문제없이 시동이 걸렸고 며칠 전에도 DIY 숍에 갔다 왔던 터라 하필 지금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선가 합선이 일어나고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계속 전원이 공급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미 해가 진 저녁이라 그 자리에서 어디가 문제인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일단은 배터리만 교체하기로 했다. 난 서둘러 스플리트 시에서 운영하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 부품 판매점까지 가 새 배터리를 사다가 민박집 주차장에서 바로 바꿔 끼웠다. 제대로 시동이 걸리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이미 시계는 9시에 가까워져 있었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작별인사까지 했던 혜아와 발레리나 친구는 식탁 앞에 다시 둘러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 수다를 떨며 진짜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크로아티아의 겨울은 비가 많이 온다. 바다와 산이 가깝게 붙어 있는 지형 때문인지 강풍도 엄청나게 분다. 다시 출발하기로 한 다음 날 날씨가 딱 그랬다. 이번엔 시동도 문제없이 걸렸고 혜아와 발레리나 친구도 눈물을 쏟지 않았지만 대신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헝가리를 향해 북쪽으로 세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올라가다가 잠을 자기 위해 밴을 세운 정박지는 강품으로 차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기분은 가장 최고였다. 감옥처럼 느껴졌던 민박집에서 나왔기 때문이었고 밴라이프 내내 우릴 괴롭혔던 빈곤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으며 이제는 둘이 아닌 셋이었기 때문에 우린 그 어느 때 보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 널찍한 민박집에서 좁은 밴으로 다시 들어와서 어색했고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겨우 150만 원 남짓의 돈이 통장에 있을 뿐이었으며 사랑이가 완전히 훈련이 되어 있는 게 아니어서 아직은 산책이 불편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만족하며 즐기는 것이 우리의 큰 장점이었기에 너무나 풍족했고 불편함 없이 행복했다. 물론 가끔은 더 큰 단점이기도 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사고에 대처하는 게 쉽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불안감과 불확실함이 머릿속 저편에서 늘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를 빠져나가기 전 중간 정박지

어찌 되었든 중간 정박지에서 하루 자고 난 다음 날 바람은 여전했지만 비는 그친 상태였다. 실내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는 사랑이 덕분에 강풍을 맞아 가면서 산책을 하느라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금세 예전의 익숙함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삼 개월 동안 천천히 준비를 한 덕분에 모든 것은 민박집 이전의 생활로 빠르게 돌아갔지만 우리가 딱 하나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한 게 있다는 걸 첫날밤에 깨달았으니 그게 바로 난방이었다. 

사실 준비를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거였다. 겨울이라 날씨가 추울 테니 유럽의 남쪽 해안을 따라서 다니다가 후다닥 스페인으로 넘어가자는 계획이었기에 난방기구를 사지 않았다. 게다가 밴은 처음부터 단열재를 충분히 넣어서 만들었고 IKEA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이불을 샀기 때문에 조금은 춥겠지만 어렵지 않게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날밤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어찌나 추웠는지 밴의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입에선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이동 중에는 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니 괜찮았지만 정박지에 차를 세우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내부는 금세 얼음장처럼 식어버렸다. 밴의 문에 붙어 있는 고무패킹들이 모두 오래되고 헐거워져 그 틈 사이로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쳐 들어오고 바닥에선 한기가 어마무시하게 올라오기 때문인 거 같았다. 아직 크로아티아를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이 정도면 헝가리나 체코는 얼마나 더 추울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엔 난로로 가득 찼다. 난로를 사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창 밴을 개조하던 4월의 영국은 일교차가 커서 밤에 꽤나 추웠다. 가뜩이나 밴 안에는 침대 말곤 아무것도 없었으니 체감온도가 더 낮게 느껴져서 급하게나마 부르스타에 넣는 가스통으로 불을 때는 아주 간단하고 저렴한 캠핑용 난로를 샀었다. 하지만 난로 바로 앞에 있는 발바닥만 뜨거울 뿐 차 안을 전혀 데우질 못했고 가스통 하나로 이틀 밤도 채 버티지 못한 채 바닥이 났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도 우리에겐 너무나 부담이었다.

그러다 오래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무실에서 쓰던 등유 난로가 떠올랐다. 기름값도 그리 비싸지 않고 오래갔으며 냄새도 나지 않고 엄청 따뜻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우리 밴 안에 놓을 수 있을만한 캠핑용 등유 난로가 유럽 내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대부분 온라인 판매였지만 분명히 캠핑용품을 파는 곳에서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최대한 빨리 크로아티아를 빠져나가 헝가리에서 캠핑용품점을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린 정박지를 출발해 다시 한참을 달려 해가 지고 나서야 헝가리 국경을 지났다. 별 다른 비자 없이 크로아티아에 삼 개월이나 있어서인지 국경을 통과하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난 헝가리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아주 오래전 배낭여행 중 부다페스트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지하철 티켓의 펀칭을 똑바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하철 공무원인 듯한 사람들로부터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벌금 10만 원을 내라고 강요당했었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종종 하는 부패한 공무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후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헝가리는 변한 게 전혀 없었다.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에서 지나가던 경찰차가 차를 돌려 우릴 쫓아와 세웠다. 무려 3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려 밴으로 다가와서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차에는 뭐가 있는지 캐물었다. 선임인 듯한 늙은 경찰이 헝가리 말로 질문을 하고 신입인 듯한 젊고 건장한 경찰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는데 신입 경찰은 무언가 어색하고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면서 선임의 질문을 전달했다. 

남자인 나 혼자 있었다면 늦은 시간에 낡은 밴을 타고 헝가리의 시골길을 달리는 게 썩 달갑게 보이지 않겠지만 혜아와 사랑이까지 있으니 그리 꼬투리 잡을 게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찰차로 돌아갔다. 밤늦은 시간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한밤 중에 이동을 하면서  왜 경찰차를 마주친 적이 없겠는가.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우릴 세운 적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헝가리에서, 그것도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경찰이 3명이나 와서 검문을 하는 것일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6시간이 넘게 운전을 했고 아직 어디서 자야 할지 결정도 하지 못한 상태라 우리도 바로 그 자리를 떴다. 

가족이 운영하던 헝가리 캠핑카 용품점

헝가리에서의 첫날밤은 어느 숲 속의 황량한 주차장에서였다. 크로아티아와는 달리 다행히도 바람이 불지 않아 이불을 덮으면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추웠다. 하지만 여전히 이불 밖의 얼굴은 추위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여전히 머릿속은 난로로 가득 차 있어서 아침도 거르고 캠핑 용품점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집요하게 집중해서 찾아다닌 끝에 지금은 어디인지 기억도 안나는 어느 작은 마을의 한 구석 캠핑카 용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작은 등유 난로를 발견했다.

소박해 보이는 가족이 운영하는 캠핑카 용품점의 주인 아들은 우리의 영국 번호판을 단 캠퍼밴을 보고는 곧 영국에 가서 캠핑용품 전시회에 참여한다며 제법 능숙한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고 내가 사는 등유 난로는 네덜란드 제품이니 필요한 부품은 거기서 사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혀 주었다.

온 가족과 인사를 하고 밴으로 돌아와 난로를 싣고 나니 너무나 뿌듯했다. 벌써부터 밴이 따뜻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난로에 온통 빼앗겨 있던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는 거 같았다. 


얼른 난로에 등유를 넣고 불을 붙여 따뜻한 밴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등유만 넣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유소에 전화만 하면 기름차가 와서 등유를 통에 담아서 줬다. 그런데 유럽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등유를 파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난로를 사야 한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을 뿐 등유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등유를 헝가리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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