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기소개서에서 UX라이팅까지
서른세 번째 책.
저자 편성준 / 북바이북 / 2022.7.21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쉽지 않다. 거의 모든 창조력은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라도 말했다. 그의 말은 옳다. 제로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없다.
- 25p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들어가서 잘 팔리는 책 밑에 달린 리뷰들을 찬찬히 읽어본 적이 있다. 리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공감'과 '위로'였다. 독자들은 저 높은 곳에 앉아 호통을 치는 '작가님'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사연과 정서를 가진 '라이터'를 원하고 있었다.
- 28-29p
어머니가 내게 남긴 무수한 명언 중 최고는 "우는 소리하지 마라. 운다고 누가 돈 안 준다."였기 때문이다. 유머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버나드 쇼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사랑이 필요하지만 인생을 견디는 데는 유머가 필요하다고.
- 41-42p
커트 보니것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는 소설가 김중혁도 "농담이야 말로 인류가 발명한 것 중 제일 숭고한 것"이라며, 자신이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심각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42p
나는 봉 감독의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게 크리에이터의 기본자세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잘 듣는 사람이 잘 쓴다."는 서양의 글쓰기 격언은 시공을 초월해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였던 것이다.
- 86p
작가이자 문학 에이전트인 노아 루크먼은 <플롯 강화>라는 책에서 '배경과 의상과 소품은 아름답지만 내용이 없는 영화, 문장은 섬세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책'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작품을 대하면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영화관에서 나오거나 책을 덮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재미가 없으면 안 보고 안 읽게 된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111p
<쇼생크 탈출>로 유명한 영화배우 팀 로빈스는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 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누구나 창의적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창의적 과정을 함께 했을 뿐인데 인생이 변한다는 게 잘 안 믿어질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참여 이후 재범 확률이 80퍼센트나 감소했다고 한다. 팀 로빈스는 말한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우울 같은 부정적 요소들은 어쩌면 창의적인 불꽃이 결여되어 있어서는 아닐까?"
- 117p
글쓰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과정 자체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라는 것이다. 일단 글을 쓰려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궁금한 점은 무엇인지 등을 찬찬히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글을 썼는데도 횡설수설하고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한 편의 글을 쓰려면 주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충분한 자료 조사와 기획이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야지 아무것도 없이 무조건 쓰려고만 들면 첫 줄부터 막히는 것은 물론 결론도 이상하게 난다.
- 119p
문장이 또 다른 문장으로 이어지면 어느새 당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글쓰기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중 속에서 모호하던 안개가 걷히고 글이 써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매력이요 보상이다. 얼마 전 타계하신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 교수는 "우리는 모두 천재로 태어나 둔재가 되어간다"라고 했지만 이 순간 당신은 다시 천재가 된다.
- 119~120p
글쓰기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변하게 한다. 글쓰기는 나를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게 한다. 글쓰기에는 인생을 밀고 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 127p
청주에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다가 <한겨레21> '21 WRITTERS 2'에서 은유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글쓰기도 '깊은 대화'라고 새로이 정의했다. 누군가의 생각을 곱씹어보고 자신의 정렬된 생각을 사려 깊은 언어로 골라 세상에 내놓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게 글쓰기라는 것이다. (중략)
은유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에게 "은유 작가는 글쓰기 기술이나 책 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글쓰기는 '자기 삶의 해석권을 내가 가져는 오는 행위'라고 일러 준다. 삶을 좀 더 촘촘히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사람으로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은유의 글쓰기 수업이다.
- 131p
조지프 콘래드는 글을 쓸 때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점심 식사를 차려주면서 "오전 내내 무슨 글을 썼어요?"라고 묻자 콘래드는 "쉼표를 하나 뺐어"라고 대답했다. 저녁때가 되어 다시 식탁 앞에 앉은 그에게 아내가 물었다. "글은 잘 써져요?"콘랜드는 대답했다. "아까 뺀 쉼표를 다시 넣었어."
- 144p
'만약에'를 뜻하는 영어 단어 '1F'는 얼핏 보면 1F(일층) 같다. 즉 만약이란 단어엔 1층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난 이걸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상상력은 1층이 튼튼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진다는 경고 아닐까?'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 160p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책을 읽고 메모하라. 그리고 막연해질 때마다 '만약에'라고 써보라. 그게 글을 쓰게 만드는 요술 방망이니까.
- 161p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더 뛰어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두렵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의 모습보다는 뭔가 뒤적이면서 쓰는 내 모습이 더 좋다. 천재 타자도 열 번에 예닐곱 번은 아웃을 당한다는 걸 떠올리면서 쓴다. 당신만 울면서 쓰는 게 아니다. 작가는 다 운다.
- 181p
오죽하면 미국의 작가 앤 라모트는 "작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게 글쓰기지만 가장 하기 힘들어하는 일 역시 글쓰기다"라고 말했을까.
- 191p
가끔 아이디어 단계에서 '이거 어떠냐?'며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때로는 초고를 가슴에 칼처럼 품고 오랜 시간 갈아보자. 결국 글을 어떻게 완성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까.
- 224p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글쓰기입니다.
힘겹게 썼던 첫 책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제 인생에 두 번째 책은 없노라 선언하였고, (심지어 그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니 전체 불량의 반이 이미지로 채워진 디자인 전문 서적이었다는 웃픈 스토리...;) 비공개로 종종 쓰던 일기도 접었고, 그 어떤 작가님의 책에도 감히 서평 한 줄 남기지 않았습니다.
'글쓰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과정 자체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에는 인생을 밀고 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제가 작가님 책에서 이 두 문장을 만나고 글쓰기를 시작할 용기를 내었습니다.
우선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편적인 문장이나 생각들을 툭툭 던져 보려 합니다.
과연 첫 번째보다 백 번째 글이 읽을만할까요?
일단, 딱 100개만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