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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MYO Mar 16. 2020

Book 23.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나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보다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스물 세 번째 책.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 정여울 / 21세기북스 / 2020.03.11


인간관계란 곧 아군을 만나는 일이라 믿어왔던 편견은 조금씩 빛을 잃어 갔다.

아군을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적군을 만들지 않는 일이고, 군을 만들지 않는 일 보다 중요한 것은 적군과 맞서는 상황에서도 마음에 평정을 잃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 21p -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버지니아 울프는 친구들을 통해 창작의 영감을,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중략) 런던의 빛나는 지성들이 참가했던 블룸스버리 그룹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우정의 힘과 연대의 힘을 가르쳐준 소중한 안식처였다. 내 꿈을 '판단'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사람. 그 일이 '될까 말까'를 판가름하기보다, 내가 그 일로 인해 '행복할까'를 걱정해주는 사람. 그가 우리의 친구다.

- 22p -



무언가를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게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아니 그와 함께 해야만 이 시간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어딘가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 내가 그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느낌. 친구는 '함께 있음'의 의미를 끝없이 확장시키는 존재다.

- 25p -



글 쓰는 사람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서른 즈음의 그때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괜찮은 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얼핏 보면 '괜찮아 보이는 돌' 속에 숨은 심각한 병증을 꿰뚫어 보고,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내가 더 타락하기 전에, 시들어가는 내 영혼의 등짝에 상큼한 죽비(竹篦)를 날려주었던 것이다.

- 28p -



나는 20대가 스스로 통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미션 중 하나가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 치유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핵심이 아닐까. 

- 36p -



고생 자체에는 아무런 아름답고 화려한 의미가 없다. 육체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만 가속화시키는 고생을 미화하지는 말자. 특히 자신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젊어 고생'은 더더욱 말리고 싶다.

- 49p -



그리고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재능은 타인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숨은 보석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믿는 자의 자발적인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재능의 진정한 비밀은, 자기 자신에 대한 뜨거운 믿음이라는 것을.

- 78p -



우리 시대에 필요한 첫 번째 재능은 우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내는 재능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인가를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스스로에 대한 집요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순간에 가장 빛나는 존재일까.

- 83p -



내가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 때,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 109p -



10대에는 칭찬받고 싶었다. 20대에는 사랑받고 싶었다. 지금 나는 넘쳐나는 사랑을 마음껏 퍼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145p -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매번 비슷한 것을 사고 또 산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로 압축되었다. 마음이 허해서! 똑똑한 소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떤 감상적인 자기 연민 때문에 쉽게 충동구매를 하고는, 막상 사고 나면 이상한 죄책감에 빠져 그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결국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선물의 시효조차 지나면 옷장에서 봉인된 채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버리는 가여운 물건들. 이들은 세상을 향한 내 부채의식의 잔인한 증거품이다.

- 165p -



그래도 나는 아직 책이 제일 좋다. 책을 들여놓는 것은 왠지 그 책이 담고 있는 멋진 타인의 인생을 내 방으로 초대하는 것 같아서. 고소한 책 냄새는 언제가 기어코 내 벗이 되어줄, 낯선 타인의 삶의 향기 같아서.

- 168p -



그러니 조금은 귀찮더라도, 소통 자체가 매번 두려울지라도, 세수를 하고, 신발을 신고, 겉옷을 걸치고, 세상 밖으로 나가자. 표현하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매일 조금씩 질식사하게 된다. 영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외로운 자신의 영혼에게 언제든지 마이크를 대주는 바지런함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저 머나먼 세상 바깥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속에, 우리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숨어 있다.

- 224p -



교육은 '쓸모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빛나는 힘'을 끌어내는 일이 아닐까. 최고의 스승은 미주알고주알 각종 정보를 주입하지 않고,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정체를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무엇의 너의 '눈뜸'을 가로막는 것인지. 무엇이 너의 숨은 날개를 꺾고 있는 것인지. 그 장애물의 정체를 깨닫고 그것을 마침내 무너뜨리는 것은 스승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 247p -



우리는 먼저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아야 하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249p -



자녀들이 어릴 때는 가족의 의미가 '보호'와 '성장'에 있다. 아이들이 무사히 잘 클 수 있도록, 부모는 따스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 가족은 서로가 '더 나은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단계가 오히려 더욱 험난한 여정일 때가 많다. 바라보고 지켜주되, 서로가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주지만,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부모는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기에.

- 290p -



그리고 우리는 못내 부끄럽지만 때로는 인정해 줘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어른이지만, 가끔은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고, 아이처럼 책임 따위는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고. 그럴 때 가족은 서로의 유치찬란함을 살짝 눈감아주면, 서로의 어리광을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 한다. 이런 '어른들의 때늦은 애교'가 여전히 먹히는 장소는, 아직까지 저마다의 '우리 집', 그곳뿐이다.

- 294p -



존재가 사라진 후 다른 존재에 남긴 공동(空洞)의 크기가 살다 갔다는 존재 증명의 전부가 아닐까. - 박완서

- 322p -



인생에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다림'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럴 땐 온갖 '나쁜 가능성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그저 말갛게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시간을 아름답게 밝혀주는 것은 '결과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잠시만이라도 '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걱정하고, 판단하고, 저울질하는 나를 잠시, 그러나 완전히 놓아주는 것이야말로 기다림의 기술이다.

- 351p -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이 두려움은 확실히 과장되었다. 우리는 두려움을 마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느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학습했고, 두려움에 짓눌리고, 두려움에 잡아먹혔다. 한국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개개인에게 과도한 두려움의 문화를 학습시킨다. 남에게 뒤지는 것에 대한 불안. 남들보다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에게도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불안. 이런 '학습된 불안'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데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 364p -



20대를 괴롭히는 두 번째 두려움, 그것은 삶에 대한 조급증에서 온다. 나 또한 '서른이 되기 전에'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은 좀 더 안정되고, 평온하고, 거리낌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을 향한 공포는 숫자를 향한 미신일 뿐이다.

- 36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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