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westUX 2018 콘퍼런스 후기_06
MidwestUX 2018 콘퍼런스 마지막 날.
마지막 파티 장소는 콘퍼런스 장소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파티를 하려고 버스까지..?) 파티 장소는 지하 1층, 지상 1층, 지상 2층, 지상 3층 루프트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하에선 밴드 공연, 1층에선 라이브 드로잉과 나와 함께 간 말라즈의 작품 전시, 그리고 2층과 3층에는 각각 바텐더가 음료를 만들어 줄 거란다.
말라즈와 나는 전시 준비를 하기 위해 그녀의 차를 타고 조금 일찍 움직였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몇 사람들이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갤러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았는데, 개인적으론 언젠가 작은 건물을 갖게 된다면 1층에 만들고 싶던 갤러리의 모습과 흡사했다! 하얀색 벽만 있는 것이 아닌, 붉은색 벽돌, 나무가 조금씩 어우러져 다양한 텍스처를 느낄 수 있는 곳.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편안한 느낌과 세련된 느낌을 모두 느낄 수 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크기도 딱 적당했다. 전시, 파티, 모임이 모두 가능한 공간. (언제 가는 꼭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슬슬 말라즈의 전시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는데, 영상은 가능하지만 사운드가 나오지 않는단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월마트에서 급하게 사온 액자에 작품 사진을 넣어 같이 전시하기로 했는데, 액자를 이젤 위에 올려놓으니 생각보단 그럴싸하다.
수단에서 온 말라즈와 만난 지는 한 달이 넘었는데도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단에서는 가정이 있는 남녀가 혼외자를 갖게 되었을 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여자는 체포되고 광장에서 경찰에게 몰매를 맞는 단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은 가문의 수치이기에 그 여자는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숨기고 몰래 아이를 낳아 사람들이 발견할 수도 없는 곳에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단다. 그러는 동안 당사자인 남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하게 되었다는 말라즈의 퍼포먼스.
위의 사진 왼쪽에 있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은 우리에겐 그저 망토 같지만, 수단에서 이 옷을 입고 있는 것 벌거벗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영상 속 그녀는 이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데, 남자 관객들이 표정이 일그러 지면서 마구 욕을 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언어를 몰라도 누구나 바로 추측할 수 있는 모습) 당황한 여자 관객들을 입을 가리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런웨의 끝에는 아크릴로 된 투명한 벽이 있는데, 그 뒤에는 남자 한 명이 서있다. 그때 누군가가 말라즈가 시작 전에 미리 나누어 주었다는 달걀을 던지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달걀을 던지는데(모두 남자), 그녀가 그 많은 달걀을 모두 맞고 주저앉는 동안 벽 뒤의 남자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모든 퍼포먼스가 끝나고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어떤 여자 관객들은 울기도, 어떤 남자 관객은 멍하니 앉아 있기도, 어떤 남자 관객은 여전히 화를 내고 있기도 하다.
말라즈는 수단에 있을 때 이 퍼포먼스를 했는데, 퍼포먼스가 끝나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한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아버지의 강력한 권고로.
피곤이 쌓여있던 데다가 그녀의 이야기에 너무 감정 몰입을 했는지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파티 시작 전까지 잠시 쉬려고 차 안에 앉아 있는데, 10분도 되지 않아 말라즈가 빨리 나오라고 난리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저기 좀 봐!"
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색. 더 정확히 말하면 건물에 비친 노을의 색이 예술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둘이 들락날락하며 변해가는 하늘의 색과 노을을 즐겼다. 이런 자연의 색만큼은 감동을 주는 컬러가 또 있을까? '멋있다, 감동적이다'라는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 감탄의 연속이다.
사람들이 몰려 오기 전에 파티 장소를 부지런히 카메라 담고 루프트 탑으로 올라갔는데, 여긴 또 야경이 예술이다. 아무 기대 없이 콘퍼런스를 듣기 위해 와서 그런가? 아니면, 시카고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클리블랜드에 너무 오래 있었나..? 무엇을 봐도, 누구를 너무 만나도 너무 좋다. 뉴욕을 좋아하고 몇 번을 가봤지만 뉴욕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언제가 가회가 된다면 시카고에서는 몇 달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 구글 건물엔 아직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도착할 테고 곧 파티가 시작될 텐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하긴 다들 모니터만 들여다보느라 이쪽은 보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말라즈의 작품 건너편에서는 라이브 드로잉이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한 손엔 술잔을 듣고 그와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림을 잘못 그린다거나 손을 멈추는 법이 없다. 미대를 나왔지만 컴퓨터가 없으면 디자인을 못하는 디자이너로서 참으로 부러운 능력이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 그의 작업은 끝나지 않아 아쉽게도 완성작은 보지 못했다.
말라즈의 작업에도 하나, 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 몇몇은 아주 중요한 조언과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그녀의 첫 번째 전시는 그녀의 기대보다 훨씬 나았고, 말라즈는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줘서 고맙다며 여러 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난 그녀에게 말했다.
"시카고에 데려와줘서 고마워! 난 여기가 뉴욕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말라즈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우린 배가 엄청 고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허겁지겁 음식과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물만 마시니까 말라즈가 묻는다.
"다들 여기 바텐더 실력이 괜찮다던데, 뭐 한 잔 안 마셔?"(정작 본인은 술을 못 마심)
"밤에 너 혼자 운전하면 힘들잖아. 너랑 운전 나눠서 하려고."
말라즈 왈, 내가 본인 남자 친구이면 좋겠단다. 그러면서 오늘 본인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술이나 한잔 하란다. 운전은 자기가 해도 되고 우리 내일 가도 된단다.
그렇지! 내일 가면 되지!!
훗. 난 여기서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니까.
마티니는 맛있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무르익고, 밤은 깊어지고 말라즈와 나는 아무래도 오늘 가는 건 우리 둘의 삶에 있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이 순간을 더 즐기기로 했다.
2시간 후, 우리는 급하게 나쁘지 않은 호텔을 찾았고, 그렇게 시카고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인생을 꼭 계획대로 살 필요가 있나.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시카고 내일 또 만나!
이번에 제가 다녀온 MidwestUX 2018는 매년 미국 중부에서 열리는 UX 관련 콘퍼런스로, 올해에는
CURIOSITY(호기심), COLLABORATION(협업), INTEGRITY(진실성)의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UX를 발전시키는 데 도전한다는 목표로 시카고에서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