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매달린 눈꺼풀을 비비며 레인지 전원을 켠다.
된장찌개가 데워질 동안 블라인드를 걷어야지.
차가운 베란다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 더 있다가, 베란다가 좀 더 데워지면 나가야지.
아침 해가 배어있는 블라인드를 멍하니 쳐다보다 소파에 몸을 누인다.
전화벨이 울린다.
이 아침에 누가.
아빠의 전화다.
아침 먹지 말고 기다리라 신다.
오늘 정월대보름이라 엄마가 나물이랑 찰밥을 했단다.
당신 아침 드신 후 우리 집으로 배달해 주신단다.
오늘이 보름이에요? 힘들게 뭐하러?
말이 혀끝에 걸렸지만 뱉지 않았다.
쇠심줄 옹고집의 결정은 변하지 않을 거고 이런 말은 사족일 뿐이니까.
그 사이 식구들은 된장찌개를 먹고 집을 나섰다.
나도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렸다.
바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한 시간도 더 지났는데
아빠는 연락이 없다.
아빠의 낡은 소렌토는 문제없이 오고 있을까?
폐차를 해도 서운치 않을 차를
선뜻 새 차로 바꿔드리지 못하는 무능한 딸은 걱정만 하고 있다.
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연세라 운전을 말리고 싶지만
드라이브를 진정 즐기는 아빠가 스스로 그만두는 날이 오겠거니 두고 보고만 있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뭘 또 바리바리 싸서 온다고 늦는 거면 다행이겠건만.
어젯밤 흰머리 두 가닥을 발견해 슬퍼하고 있는 나이 든 딸에게
뭘 그리 챙겨 먹이겠다고 배달까지 해 주시는지.
하필 엘리베이터 정기점검을 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아빠는 아직 소식이 없고.
이제 이런 거 안 챙겨도 되는데, 하며 투덜거리는 철없는 딸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지금 어디쯤 지나고 계실까 떠올리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덧.
결국 아빠는 10층을 계단으로 내려가셔야 했다.
- 아빠, 괜찮으시겠어요?
- 발만 들면 내려가는데 뭐, 들어가라.
계단 손잡이에 비치는 아빠 그림자를 길게 길게 바라보았다.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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