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두두니 Apr 05. 2021

베란다 판타지아

남서향인 우리 집 베란다는 온종일 볕이 잘 든다. 그래서인지 식물 하나가 들어오면 위로든 옆으로든 풍성하게 자라 금세 화분이 꽉 찬다. 꺾꽂이나 포기나누기를 하면 두세 화분은 뚝딱 생긴다. 봄이면 방앗간을 들르는 참새처럼 화훼 단지에서 꽃모종을 골라 들여놓으니 베란다는 가히 밀림을 방불케 한다.

 

꽃 욕심을 줄일 요량으로 작년부터는 꽃씨를 심기로 했다. 꽃씨는 모종에 비해 확연히 작으니 욕심을 줄인 게 맞지 않나.

 

심어보니 꽃씨는 모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모든 씨에서 싹이 나오지도 않거니와 싹이 난다 해서 다 잘 크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구근은 성공률이 높았다. 백합과 히아신스 구근은 한 알의 이탈도 없이 모두 튼튼한 꽃대를 올려 주었다.


지난가을, 수레국화, 스토크, 리시안서스 꽃씨를 심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싹을 기다렸다. 심은 지 일주일 만에 수레국화와 스토크가 싹을 틔웠다. 둘은 떡잎에 이어 각각 길쭉하고 동그란 본잎을 쑥쑥 뽑아냈다.


정말이지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린잎이 추위에 시들진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베란다 터줏대감들과 어울려 야무지게 버텨냈다. 둘은 하루가 다르게 키를 올리더니 앙증맞은 꽃망울까지 맺었다.


이에 반해 리시안서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가장 기대가 컸던 꽃씨였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낌새가 없자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흙을 엎기 전 아쉬운 마음으로 화분을 들여다보는데, 개미 눈알만 한 싹 두 개가 보였다! 너무 작아 긴가민가했는데 분명 싹이었다. 꽃씨 열 개 중 간신히 건진 두 개의 싹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늦게 나온 만큼 크는 것도 더디긴 하지만.


지금 베란다엔 도도하게 꽃대를 올린 청보라색 수레국화와 겹겹이 핀 연분홍 스토크가 만발하다. 꽃씨부터 개화까지 오롯이 크는 과정을 함께했기에 더 애착이 간다. 아기 때부터 업어 키운 손주에게 유독 정이 더 가는 할머니의 마음이 이럴까.


구근에서 피어난 히아신스는 매혹적인 향을 뿜고 있으며 백합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꽃봉오리를 맺었다. 개미 눈알만 했던 싹은 겨우내 개미 얼굴만큼 자랐다. 여름 즈음이면 하늘하늘한 리시안서스 꽃을 피워 주겠지.


시린 겨울, 싱싱한 초록 잎과 다채로운 색상의 꽃들이 춤추는 베란다로 발을 내디딘다. 그곳은 향긋한 생명력이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판타지아다. 온 마음이 푸릇푸릇한 싱그러움으로 물든다. 창밖 저기, 봄이 오고 있다.


by duduni




2월 초에 신문사에 보낸 글인데 3월 말에 실어주셨네요.

계절적으로 늦어버렸고, 온 산천에 봄꽃이 만발한 이 시기에 걸맞지 않은 듯하지만

올려봅니다.

더불어 저희 집 베란다에 있는 꽃의 실물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수레국화 / 백합(화이트 헤븐) / 개나리 자스민
히아신스 / 리시안서스 싹 / 스토크
네모필라 /  베란다 판타지아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돌아갈 수 있을까? 일상으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