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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Jul 24. 2024

내 찰나 동안에 있어줘


너는 사랑을 믿니? 라고 물었지만  대답 대신 길게도 침묵했었네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대신할 다른 어떤 말을 찾을 수 없었겠지
밤이었고 스산한 길 마디마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이고
 모든 말들은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것이었
넌 공허한 눈빛이었어 꼭 허무와 닮아있었지
슬프단 말로도 표현 못할 순간들이 있어
널 사랑하는 난 그게 이 순간이야


너는 사랑을 믿니? 이런 말보다 오래도록 하고 싶은 말이 어 라고 할걸 그랬어
그리 지 않을 거야, 내 감정을 지금 한 번쯤은 들어줘 라고 했어야 해
내가 한발 다가서면 두 걸음 물러나는 너였지
난 너를 아는 사람이지만 네가 어떤 밤을 보내는지 모르기에 세상의 무엇이 널 애닲게 하는지 모르기에 널 다만 이해하려 애쓰고 그 덕에 내 시간의 대부분은 기다림이었지
널 아주 많이 생각했고 용서하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원했고 쌓았다가 허물었고 후회하고 다시 짚어서 이 모든 일의 처음으로 되돌아갔었어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렵고 우스운 것일까
홀로 많이도 운다면 그 대가가 무엇이며 내 지난한 날들은 어떤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 길이 멀어
차갑고 어둡고 닿는 곳마다 다르지 않고 역시나 그런 곳이야
걷고 걷지만 어디에도 너는 없고 홀로 밤이었고 길의 끝일 곳에서 하얗게 동이 트고 있었
사랑을 나는 믿어 내게서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내 가까이 있
언젠가 이 말을 할 거라고 나지막이 되뇌고 그날 그 순간을 꼽아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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