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화장을 고쳤는지 테이블 위 티슈에 당신의 붉은색 루주가 묻어 있었다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그 위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았다 당신이란 사람은 내가 늘 갖는 애착이고 이러한 작은 충동은 내 일상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신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이 같은 습관들은 애정에서 시작되었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여럿 갖게 되었다
음악을 켜두고 커피 한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온다 그래 애써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 남은 시간을 소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여름 바람의 자락 어느 부분이었는 게 내 뺨을 스쳐왔고 벌써 여러 번의 당신과의 계절이다 이미 오래전 지나간 여름들은 분명 다른 질감의 것이었다 그때 그 풍경은 분위기와 생동감은 분명 그리워할 만한 것이기에 앞으로의 놓인 길이 추억과의 멀어짐 같아서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럴 나이는 아니잖아' '꼭 사랑해서 사니'라는 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보편적인 삶에 대한 회고. 이 말들을 할 나이 즈음이면 어김없이 입에 올리곤 하지만 그러나 난 아직 관습적이면서 자조적인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오늘에 의미를 더 두고 싶달까 철없이 굴면 어떻고 아직 사랑이 전부면 어떤가 애틋한 추억이 또 한 번 커다랗게 일 것만 같은 당신과의 바다가 좋다 여름빛이 농밀하고 부는 바람에 물기가 만져지면 생각해 두었던 쪽빛 바다에 가기로 했다
당신이 설령 어둔 곳이더라도 나를 쉬이 찾을 수 있게 테라스에도 거실도 안방의 조명에도 붉을 밝혀두었다 하얀 달이 뜬 밤이었고 당신을 안내할 존재는 이리도 많다 당신은 내게로 오는 길을 잊지만 않으면 되고 바라건대 내가 익히 아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면 되었다 설령 시간이 스치고 또 스친대도 당신이라면 마음 놓아도 좋겠지 밤은 깊어가고 멀리로 야경이 된 도시 위를 걸어 당신이 오직 날 향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