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차

#7.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육아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모든 기준은 다윤이의 삶으로 결정되었다. 나의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도 말이다. 아내와 둘이 살았던 시절의 삶과 생각해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갑자기 바뀐 내 삶 속에서 나는 ‘삶의 시차’를 경험하고 있다. 시차의 여파는 컸다. 항상 잠은 부족했고,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잠을 자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다윤이를 보다가도 일을 생각날 때고 있고, 일하다가도 다윤이가 생각날 때도 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면, 두통과 피로가 밀려올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시차 증후군’이다.

삶 속에서도 시차가 발생할 때가 제법 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있을 때, 이 사람과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베테랑과 일하다 보면,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임을 느낄 때가 있다.


이처럼 삶의 시차는 내 삶 곳곳에서 발견된다.

삶의 ‘시차 증후군’의 치료법은 없을까?


다윤이가 자는 시간. 겨우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다시, 낮에 했던 수잔 발라동을 생각해본다. 그녀도 자신의 삶 속에서 시차를 경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자발 무도회>와 <숙취>의 표정이 이렇게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잔 발라동은 자신의 삶 속 시차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2022-01-20 12;00;28.PNG 수잔 발라동, <푸른방>, 1923.


그 해답을 수잔 발라동은 찾았던 것 같다. <푸른 방>은 놀랍게도 수잔 발라동이 그린 자화상이다. 이전 르누아르, 로트레크가 그렸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이전까지는 화가들의 ‘뮤즈’였다면, 이제는 ‘나’를 의지대로 그렸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복장과 자세도 매우 편안해 보인다. 담배를 문 그녀의 모습에서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이전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진정한 수잔 발라동의 모습이다.

그렇다! 그녀는 화가가 된 것이다. 누군가의 모델로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직접 화폭에 담는 화가가 되었다. <숙취> 속 그녀의 모습은 삶의 시차 속 증후군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극복했다.


시차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법은 ‘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수잔 발라동처럼, 나도 나만의 삶을 글이란 형태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수잔 발라동을 떠 올린다. 삶의 시차가 발생하는 곳곳을 나의 터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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