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나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는 그 무엇을 하든 간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금방 흥미를 잃는다. '왜'라는 것이 없으면 그 무엇도 오래갈 수 없다. 그 한 마디를 던졌기 때문에 내가 거기서 재미를 발견하던, 명분을 발견하던 뭐라도 발견해서 그 왜에 대한 답을 적어낼 수 있다. 그게 나란 사람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한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내가 '왜'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퇴근 후 힘겹게 발을 끌어 카페에 나를 데려다 놓아도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저 "살아야 하니까", "돈은 벌어야 하니까" 등의 답변은 제외한다. 그게 가장 기초적인 답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은 단지 그것만으론 살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답만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제법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다. 다만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더라도 문제를 붙잡고 끙끙 앓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다. 해결이 안 돼서 그렇지 어쨌든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단 응원을 들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피하기 때문에 삶이 더 어려워진다. 그런 경우들이 전부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에 사용하면 분명 도움이 될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공유하려 한다.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내 몸이 제대로 쉬었는지를 확인한다.
2. 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잘 안 된다면 그걸 같이 물어봐 줄 사람을 구한다.
3. 정말 짧게 순간들이라도 좋으니 스스로에게 '왜'라고 묻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 내용들이 내가 생각했을 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실제로 내게 이런 내용들을 적용해보고 있다.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차례로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먼저 과거에도 동양에서는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지 않았다. 몸과 정신을 같게 보는 사자성어들도 많다. 즉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 정신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하겠지만 굳이 순서를 먼저 매기자면 몸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보다 몸을 먼저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내용은 시야를 넓혀보라는 의미다. 사람은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잘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시를 들자면 상담을 받아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나 붙잡고 묻는 것, 너무 타인의 말을 우선시하는 것은 지양하길 바란다. 내 생각이 정리가 안 될 때 다른 사람과 같이 풀어보면 그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지역에 있는 상담센터등을 이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도 종종 상담을 받을 때가 있지만 스스로 묻을 때 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다. 스스로에게 왜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뭐든 해봐야 는다. 본인에게 묻는 것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끙끙 앓으며 질문하기보다 짧은 순간이라도 본인에게 물어보는 연습을 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마지막 문장을 적어봤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집착해야 한단 말은 아니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이 있다면 그게 살아가는 데 있어 순풍이 되었으면 되었지 본인을 더 힘들게 하진 않을 것 같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에 대한 답이 떠오르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