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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25. 2021

배꼽시계가 정확한 사람

밥시간에 진심인 사람

나는 밥 먹는 시간에 진심인 사람이다. 

이 음식이 맛있고 맛없고 그걸 따지기보다 삼시세끼 배꼽시계가 정확해서 시계를 보지 않아도 끼니를 챙길 시간을 본능적으로 안다. 아침은 8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 중간에 3-4시쯤 또 한 번 배가 허기가 져서 간식을 챙겨 먹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이들 어린이집 시간과도 비슷하고, 이유식 시작할 때 세끼 시간 맞춰 먹이는 상황과도 같은 것 같다. 나는 그 단계와 같은 생활을 아직 하고 있나 보다.



엄마가 되고 이 부분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배가 고프니까 밥을 차리게 되고 일단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는다. 그럼 자연스레 아이들의 먹을거리도 챙기게 되고.. 결국 아이들도 정확한 시간에 밥을 먹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배꼽시계의 최대 그리고 강력한 단점은 그 시간이 되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 뭘 먹지 않으면 세상 이런 예민함이 없다. "뭐라도 먹자, 일단 먹고 얘기하자." 남편도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정도로 화낼 일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면 시계를 쳐다본다. 

"그래서 배가 고픈 거지, 지금?"

"나도 어이가 없지만 그런 거 같아. 밥부터 먹고 얘기하자"



1살도 2살도 아닌데 나는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난다. 

아이들이 쭈쭈 먹을 시간이 되면 악을 쓰며 울고 숨이 꺼이꺼이 넘어갔었다. 젖을 물리거나 분유를 타는데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동안을 못 참고 얼른 밥 내놓으라고 울어재끼는 아이를 보면서 그 잠시를 못 기다리나 싶었다. 물 끓이면서 "아이고"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젖꼭지를 물려도 화가 삭히지 않아 바로 빨지 못하고 씩씩 거리는 아이. 흥분했던 감정이 누그러지고 나서야 눈을 감고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누굴 닮아 이렇게 성격이 급하냐고 쪽쪽 젖병을 빠는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을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100% 나를 닮았구나 싶다. 






나는 이렇게 정확히 배가 고픈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낮에 많이 먹어서 저녁은 건너뛰어야겠다고 하거나 나는 배가 고픈데 남편은 아직 밥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밥 먹는 타이밍이 맞지 않는 우리. 그러니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배가 고프면 왜 예민해지는지. 



나의 장점이자 단점.

나는 밥만 제시간에 먹으면 하루가 순조롭다. 

배가 든든하게 차면 마음이 여유로워지지 않나. 맛있는 걸 먹으면 더없이 기분이 좋겠지만, 집에 있는 사람이 매번 맛있게 먹을 수는 없다. 맛을 떠나 시간만 챙겨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별 불만이 없다. 이 나이에 이렇게 말로 글로 밥타령을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말이다.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내 배꼽시계. 

나의 성격 저 너머에 있는 지랄스러움을 깨우기 전에 배를 든든하게 채우며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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