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Sep 21. 2021

공평하지 않은 관계

노력한다고 될까

시댁과 우리 집은 거리가 있는 탓에 자주 찾아뵙지는 않는다. 차로 쉬지 않고 달려야 3시간 반. 아이들과 휴게소에서 조금 놀면 4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행사가 있을 때 주로 만나게 된다. 명절과 어머님 아버님의 생신을 기본으로 다녀온 지 2달이 넘으면 그 사이에 또 한 번. 1년에 총 5,6번 얼굴을 보며 지낸다. 그래도 매주말 아이들과 함께 영상통화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다.



보통 2달 만에 가는 시댁이기에 갈 때마다 무얼 사들고 갈까 고민을 한다. 이왕이면 부모님 마음에 드시는 걸 사가고 싶어 고민을 한다. 이걸 사면 좋아하실까 저걸 사면 마음에 들어 하실까. 그 시간과 마음까지 물건에 담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봐달라 이야기하면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고민의 시간까지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 순간이 이 관계의 어긋나는 타이밍이다. 나의 예상대로 그림대로 상황이 전개될 리 만무한데... 내가 전하고 싶은 물건만 드리면 끝인데 그 뒤 반응까지 생각해버리면 절대 채워질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무얼 들고 갈지 고민하며 드릴 것을 하나 둘 챙긴다.





나는 살가운 며느리도 곰살맞은 며느리도 아니다. 노력을 하면 과연 그게 될까?

내식대로 며느리 노릇을 하려고 신혼초 애를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파수가 어쩜 그리도 안 맞는지 서로가 원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하늘과 땅처럼 극과 극에 위치에 있었다. 서로의 기본 전제에는 나쁜 감정이 없었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할수록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며느리가 된 지 1년 2년...8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든 노력을 하는 것 또한 내려놓고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어떤 마음인지 의도인지 설명을 하기도 어렵고 할 수도 없었다. 얼굴을 보면서는 그냥 네 하며 듣고 와서 시간이 흐른 뒤 전화로 돌려 말하는 편이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요령도 어느새 터득했다. 그 또한 내방식이 아닌 눈치껏 습득하고 있는 시댁의 뉘양스에 맞춰서 말이다. 이 또한 내 마음은 배제한 채.


서운함을 토로하는 쪽은 하나.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쪽은 하나.

(딸이 아니니 100%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공평하지 않은 관계가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다른 가족의 삶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딸 같은 며느리는 애당초 말이 안 된다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갑게 지낸다는 건 어떤 걸까.

며느리인 내가 눈치껏 맞춘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가

점점 심플해지기도

점점 무거워지기도 하고있다.







시집살이하는 엄마를 오랫동안 보면서 자랐다. 장남과 결혼을 하면서 신혼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엄마. 할머니의 성질은 어찌나 드센지... 아들과 며느리의 선은 분명했고 거기에 시누이들까지,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분위기. 이것이 내가 보고 자라온 시댁의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새로운 곳에 시집 온 여자를 가족으로 맞이해준 사람이 있었나 싶다. 80년대 그 시절에는 다 그랬다고 해도 누군가는 상처 받았고 수십 년 감내하며 살았던 시간. 당연하다고 여기며 넘기기엔 가볍지가 않다. 보상받을 수도 누군가에게 따질 수도 없이 지냈던 시간을 알기에 나는 결혼을 한다고 하면 시댁과 살갑게 지낼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선입견으로 인해 시댁의 분위기에 안착하지 못했을까.

결혼을 하고 1,2년째에는 그 마음으로 죄송하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며느리 그 사이의 차가운 온도를 알기에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잘 지내고 싶었고 딸 같은 며느리는 아니어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는 아니었으면 했다. 내식대로 표현을 해도 늘 만족을 시키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무겁고 뒤가 찜찜했다. 이런 분위기는 그 선을 없애려다가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8년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섞여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선이 존재한다. 옅어질 때도 있고 짙어질 때도 있지만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생리 전 증후군처럼 시댁에 가는 날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예민해지는 걸 보면.



아마 사는 동안 계속 

나는 이 관계가 불공평하다 투덜거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하겠다며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와도 그 순간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너무 잘하려 애쓰지도 말자고

이번 명절에도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꼽시계가 정확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