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ail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nic Cho Aug 05. 2023

<바비> 리뷰: 알고 보니 식스센스급 반전 영화?

유쾌한 농담으로 페미니즘이란 재료를 맛있게 요리하다.

 바비를 보기 전에는 적당히 잘 만든 페미니즘 영화이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바펜하이머처럼 바비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자, 뭔 일인가 싶어 궁금해서 봤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봤던 영화는 곱씹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그래서 후기를 적기 전에 가게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는데... 예상과 달리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바비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내가 본 바비는 사실 페미니즘을 은근히 돌려 까는 영화에 가까웠는데?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가부장제도 돌려깐다. 까놓고 말해 바비는 흔한 서양 코미디 영화들처럼 모두 까기 인형에 가깝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시선이 매력적인 영화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다루기 위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든 의식의 흐름을 찬찬히 살펴보자.


 영화 바비 속 바비랜드의 세계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남녀역전세계다. 이 세계에서 켄은 그저 바비의 남자친구일 뿐, 뭐 하나 가지지 못한 채 바비만을 바라보는 종속적인 존재다.

 사실 이런 클리셰는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 접했기에 이미 익숙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의 바비랜드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코미디들을 보며 웃는 동안, 바비도 '거꾸로 가는 남자'처럼 남녀역전세계의 비유를 통해 남성우월적인 시스템을 비판하고 이 잘못된 사회를 남녀평등하게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리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득권 남성을 소유욕이나 권력욕, 성욕 등에 사로잡힌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리며 자연스럽게 여성이 선, 남성이 악인 대립구도로 스토리가 진행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바비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영화는 세 가지 부분에서 내 섣부른 예측을 유쾌하게 돌려깠다. 우선 바비를 만든 회사의 임원들은 죄다 남자다. 그것도 다들 어설프고 어딘가 덜 떨어져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매한 남성들을 통쾌하게 후드려 패는 멋지고 당찬 여성 바비'가 활약하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바비는 그들의 서툰 추격을 손쉽게 뿌리치고 바비랜드로 돌아온다. 그런데, 웬걸? 돌아온 바비랜드는 바비보다 먼저 돌아온 켄에 의해 켄의 왕국인 '켄덤'이 되어있었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CEO의 예상을 벗어난 말에서 1차로 머리가 띵~했다. 그는 켄 인형이 아무리 잘 팔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어린 소녀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노래 Victoria Secret처럼 소녀들을 이용해서 돈이나 벌어먹는 늙은 남성으로 CEO를 그리지 않았다. 그보단 남성이지만 소녀의 꿈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살짝 이상하지만 상냥한 아저씨로 나타나영화는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그러면 CEO가 말한 켄덤이 아닌 바비랜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는 억눌린 여성성을 자각하고 이를 해방하자는 페미니즘스러운 연설을 통해 되찾은 바비랜드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바비랜드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세계다. 따라서, 그 세계에서 남성인 켄은 소외된다. 영화가 이 장면을 다루는 방식에서 두 번째로 머리가 띵 했다.

 켄덤에서 되돌아온 바비랜드의 모습은 페미니즘의 아픈 두 약점을 건드린다. 우선, 바비랜드에는 켄을 위한 공간이 없다.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에 남성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있는가? 다음 약점은 페미니즘이 실에서도 작동하는지의 여부. 영화에는 너무나 진지한 페미니즘은 여성 중심 세상인 바비랜드라는 상향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현실도 그 이상처럼 바꾸지는 못한다는 고도의 풍자가 숨어있다. 바비랜드에서 소외된 을 통해 그 이유까지도 묘사하면서.


 하지만, 영화는 이 현실적인 한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바비는 켄에게도 따뜻한 지지를 보낸다. "Ken is me"라는 말을 통해 더 이상 바비에게 종속된 남자친구로서의 켄이 아닌, 독립된 켄이라는 자아를 깨닫게 된다. 바비랜드가 남녀역전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메시지는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이 아닌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라는 개념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꽤 괜찮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비는 이렇게 주체적인 자아를 찾은 켄들과 여성의 권리를 수복한 바비들이 공존하는 이상향인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시간과 공을 들여 유도해 낸 결론을 뒤엎어버린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현실로 나아가며 바비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바비는 분명히 여성이다. 그러나 그 바비 속에는 한 소녀가, 다른 숙녀가, 또 다른 할머니가 담겨있다. 바비는 하나의 객체가 아니다. 여러 존재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존재다. 즉, 바비라는 독립된 존재허상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바비랜드를 수복하고 그 약점인 켄까지도 "Ken is me"라는 구호를 통해 포용하여 드디어 페미니즘의 구현을 현실에서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영화는 캐릭터들의 대사 없이 그저 여러 억들의 회상을 통해 이 모든 결론이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짧지만 강력하게 던진다. 바비라는 자아가 허상이라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복합적인 관념들의 합일뿐이라면, 바비의 바비에 의한 바비를 위한 세계라는 관념 또한 허상이다. 즉, 페미니즘이 쫓는 세계도 허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하얀빛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 바비로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다. 바비는 현실로 넘어와 실제로 살아간다. 페미니즘이란 관념이 허상일 뿐이라도 그 허상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자아, 돈, 국가라는 개념이 허상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비는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영화였다. 우리의 삶에 담긴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페미니즘도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실존하진 않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상상 속의 개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페미니즘과 같은 무거운 메시지보다는, 꿈같은 현실을 유쾌하게 즐기자는 농담으로 가득한 영화였다. 갈등과 분열이 심해져 가는 우리에게 너무 진지한 주장보다는, 이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니 그 속에서 즐겁게 다 같이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가벼운 농담처럼 건넨다.




P.S. 바비에 담긴 유쾌한 농담이나 문학적 장치의 효과에 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1. 유머의 마법: 이 책에서는 진실과 놀라움+방향전환이라는 유머의 원리와 함께 과장, 대조, 구체화, 비유, 3의 법칙, 세상 건설이라는 바비에 사용된 유머 기법에 대해 알 수 있다.

2.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다른 장치들과 함께 풍자(패러디, 암시, 아이러니), 소원 성취(코믹 윙크와 리얼리티 변환의 반복)라는 발명품에 대해 알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까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