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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Mar 12. 2021

본래적 문제

체계의 해체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과학 체계의 가장 중요한 틀 중의 하나는 우주론이다. 우주론은 지상의 변화와 천상의 불변을 체계적으로 담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과학의 정수이다. 또한 그의 자연관을 가장 잘 요약해주고 있어 적어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우주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원천이자 버팀목이었다.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그의 우주론은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 시대에도 우주론적 사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그의 관점에 근본적인 통일성이 있고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므로 후에 이에 필적할 만한 규모와 독창성을 가지는 통일성이 구축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과학 체계가 구축되었을 때부터 체계는 의문스러운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알고 있었던 듯한데, 문제는 주로 우주론과 물리학에서 나타난다. 이들 문제는 근대 초기에 발견된 체계의 오류들과는 성질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오류는 관측이나 실험을 통해 발견된 것들로서 실험의 수행이 없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이에 비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일관적이 아니거나 설명이 불완전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콜라 학자들은 의구심이 드는 경우, 항상 아리스토텔레스 체계 안에서 모종의 타협 관점을 취했다. 그러나 타협이 체계의 불완전함을 덮어주지는 못한다. 자연현상은 항상 어떤 법칙을 중심으로 작동하므로 법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타협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전체 우주는 붙박이별을 운반하는 천구의 바깥 표면의 안쪽에서 끝이 난다. 천구 안쪽은 어디에도 진공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비어 있는 공간이 없게, 물질로 가득 차 있다. 공간은 오직 물질이 거하는 자리로서 정의될 만큼 물질과 공간은 함께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천구 바깥은 물질이든 공간이든 아무것도 없어 우주는 붙박이별 천구까지이므로 유한하다. 우주 안의 가장 큰 부분인 붙박이별 천구 안은 수정 같은 고체인 에테르 원소로 채워져 있다. 순수하고 불변이며 투명하고 무게가 없는 에테르는 별의 구성 성분일 뿐만이 아니라 별을 운동하게 해주는 구껍질의 성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주는 모두 에테르로 가득 차 있어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을 수 없다.


우주는 빈 공간이 없이 가득 차 있으므로 모두 55개의 수정체 구 껍질이 서로 접촉 상태에 있고 천구와 천구의 마찰이 회전의 동력을 제공한다. 다른 말로, 만약 우주의 어디에 비어있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기라도 한다면 별의 운행은 즉각적으로 멈추게 된다. 운동은 반드시 물질 간의 접촉으로 일어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 껍질의 수가 달, 태양 및 5개의 행성과 붙박이별들을 회전시키도록 모두 8개가 필요할 것 같으나 회전에 필요한 기계적 연결을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성 천구를 추가하여 모두 55개로 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로써 맨 바깥쪽의 붙박이별을 담은 천구는 가장 가까운 토성 회전용 구껍질을 회전시켜 최종적으로 에테르 껍질 중 가장 안쪽 껍질인 달의 안쪽 껍질까지 동력은 전달된다. 달이 천계와 지상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다.


달 아래의 세계는 네 개의 원소로 채워져 있어 이들의 적절한 화합과 분해 등이 지구 상의 물질을 만들지만, 원소의 분포는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물체의 운동은 외부에서 강제된 힘이 없을 경우 네 원소의 무겁고 가벼운 정도에 따라 마치 에테르 천구처럼 지구 중심부터 차례로 흙, 물, 공, 불의 동심 껍질에 정착한다. 흙은 가장 무거우므로 자연적으로 지구 중심에 동심구체를 형성한다. 불은 가장 가벼우므로 스스로 상승하여 달의 안쪽 천구 바로 아래에 자신의 껍질을 만든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지구 또한 천계의 동심 구조와 비슷하게 정적인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지구 상에서는 항상 변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달의 안쪽 구 껍질의 운동이 그 아래에 있는 불의 층을 끊임없이 운동하게 하므로 네 원소 모두가 서로 밀치며 섞이게 된다. 그러므로 순수한 형태로 원소를 관찰할 수는 없다. 이 혼합 비율에 따라 온갖 물질이 만들어지므로 지구 상에서의 변화는 하늘의 운동에 기인한다.


섞이는 과정에서 온갖 기상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달 아래와 가까운 상층부에서는 유성, 혜성, 오로라, 은하수, 구름 및 번개 등의 기상 현상은 달 바로 아래에 있는 불의 층의 끊임없는 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하층부는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으므로 비, 안개, 이슬, 눈, 우박 등의 현상이 생긴다고 하였다. 물론 불 층이 끊임없는 운동은 비단 기상 현상뿐만이 아니라 지표면과 땅속의 온갖 암석과 금속의 생성에도 책임이 있다.

이러한 지구를 중심으로 한 대칭적 동심체 우주관은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행성은 지구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기도 하여 밝기가 변하는데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계절의 길이가 변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며 행성의 역행 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는 기원후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전원, 이심률 등의 수정을 가함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바깥과 안쪽 껍질을 가진 각각의 수정 천구와 주전원의 관계가 불명확할 수밖에 없고 이심률의 도입은 지구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지상 세계에도 있었다. 지상에서의 온갖 변화가 불의 층의 회전으로 네 원소의 섞임으로 일어나지만, 대세적으로는 무거움의 정도에 따른 해당 원소의 배열이 이루어져 해당 원소는 자기의 영역에 주를 이루고 다른 원소들을 소량 포함한다. 그렇다면 네 원소는 비록 층마다 다른 원소가 불순물처럼 소량 섞여 있을지라도 무거운 순서대로 지구 중심으로부터 흙, 물, 공기, 불이 동심구를 이루어 차례로 배열되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모순이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대로라면 지구 표면은 물로 덮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육지가 있음을 알고 있다. 중세 스콜라 학자들은 본래 지구는 물로 덮여 있으나 육지가 물 위로 튀어나온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 이 문제를 피해 갔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대륙이 증거였다. 이 해법은 그럴듯하지만 뭔가 완전하지 못하다. 후일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의 발견은 대륙이 하나 이상이라는 증거가 되었으므로 한 개의 대륙설은 깨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이 진리라고 여겨졌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물체의 운동학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천구가 모두 접촉 상태에 있는 것은 운동은 반드시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있어야 하므로 천구를 움직이게 하는 다른 천구가 접촉해 있다. 물체의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매우 모호하게 된다. 공을 던지거나 대포로 포탄을 쏜다고 하자. 공이나 포탄이 움직이는 원인은 손이나 대포 때문일 것이므로 손과 대포가 목적인이다. 하지만 공과 포탄은 원인 제공자를 떠나서도 계속 움직인다. 운동을 초래한 목적인은 물체와 분리된 상태인데도 운동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인이 분리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물체가 이동하는 동안 매질이 목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물체의 동력 원인이 매질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힘을 더 주면 더 멀리 나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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