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사랑이 유별나다 보니 눈에 글자가 보이면 그냥 지나가지를 못한다.
한글을 배우는 어린아이 같이 길거리에서 보이는 간판들을 눈으로나마 쫓아서 읽느라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공산품마다 있는 깨알 같은 성분표도 거의 다 읽는 편이다.
어느 날은 책에 있는 낱말 하나하나가 쌀알 같이 느껴져서 '한 권의 책은 밥 한 공기'라고 혼자 생각하며 글 밥을 눈으로 먹기도 한다.
어떤 예쁜 단어들은 보석보다 빛난다고 생각한다.
이쯤이면 활자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참 별나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문자를 사랑하다 보면 즐길 수 있는 물 없는 낚시 놀이를 소개한다.
먼저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 권을 준비한다.
예전에 읽었던 좋은 기억이 남아 있는 책이면 더 좋지만, 필수는 아니다.
필기감이 좋은 연필 한 자루나 선호하는 색감의 펜 한 개도 준비한다.
그리고 책의 처음부터여도 좋고, 마지막 페이지도 유쾌한 발상이며,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상관이 없다.
마치 활자 위를 유영하듯이 쭉 읽으며 마음의 낚싯대를 던지고, 걸리는 단어들을 밑줄이나 동그라미로 표시한다.
종이 위에 놓인 글자일 뿐인데도 그날따라 더욱 나의 마음을 두드리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한 페이지에서 여러 단어를 표시했을 경우는 그 단어들이 어떤 의미들인지 분류해 보는 것도 마음의 심상을 정돈하고 질서를 갖추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만약 마음의 낚싯대로 낚인 단어들이 적다면 다음 페이지를 마저 유영하면 된다.
더 넓고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 년간 모국어를 사용해 왔고 몇몇 외국어도 유창하지만, 내 마음의 상태를 표현할 ‘한 단어’, ‘한 문장’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의 답답함과 막막함, 절망감은 느껴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좋은 글은 하얀 종이에 검은 활자일 뿐인데도 총천연색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가로운 호숫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것처럼, 좋아하는 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로 싱싱한 활자 물고기를 낚아보는 것이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활자 물고기가 마치 양동이에 가득 담기듯 내 마음을 위로하고, 내 생각들을 적확하게 표현한 단어들을 낚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살이 통통한 대어 같은 활자 물고기를 잡고 싶다면 추천하는 낚시 지점이 있다.
책의 머리말, 맺음말, 추천사, 책 표지, 책 광고띠에 있는 단어들이다.
이곳에는 작가의 뜻을 응축한 단어들이 반드시 한두 개는 있는 곳이다.
미처 내가 떠올리지도 못했던 멋진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오늘은 낚시를 떠나볼까?
준비물은 책과 연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