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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쓴삘 Aug 23. 2024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

어느 날, 그냥 봄바람이 불어.

사무실 사람들과의 식사를 내가 사겠다 말했다.


사장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인근에서 고급이라는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갔다. 

그날따라 교복처럼 입는 편한 옷을 입고 갔었다. 

지각할까 봐 화장도 못한 날이었는데.


그 식당을 들어서자, 갑자기 내가 이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만 즐기는 특별한 공간이 나로 인해 오염되고 있는 느낌.


다들 멋지게 갖춰 입고 요란스럽지 않은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

여기서는 절대 손사래 치며 웃으면 안 되겠다.


화장 안 한 내 민낯은 내 고민과 감정을 다 드러내며 울그락불그락하고, 사장님은 많이 덥냐고 계속 물으시고. 덥지 않아요, 난감할 뿐이죠.


사장님이 여긴 비싸니까 단품으로 시키라고 도발하시길래, 호기롭게 런치'코스'를 시켰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호기를 또 부렸네..


식전 샐러드가 나오는데, 난 양상추 샐러드가 좋은데, 적상추 샐러드가 나왔다. 

나랑 안 맞아, 진짜. 

그다음엔 금액을 꽤 추가해서 시킨 수프. 아. 슾이랬다. 

접시가 엄청 커서 기대했는데,  접시 한가운데 한 스쿱만큼 옴폭 파인 작은 웅덩이에 슾이 조금 있다. 세 숟갈 컷. 천천히 음미하느라 먹는데 15초나 걸렸다.

다음이 메인인 봉골레파스타. 

특별한 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격만큼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매우 특별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슾 접시와 같은 접시에 비엔나소시지 두 개 만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바닐라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라 바닐라빈이 곳곳에 보이는 이 아이스크림이 반가웠는데, 많이 달아 다 먹지 못했다.


식전빵을 찍어 먹은 올리브 오일은 풍미가 독특하고 맛이 좋아 나오는 길에 한 병 샀다. 

1인 코스비용과 맞먹었지만 그건 아깝지 않았다.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 안 났고 몇 달 동안 먹을 수 있으니까. 


사무실에 돌아왔다. 

컵라면 먹고 싶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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