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없는 삶은 없다
좋은 여성시는 늘 내 마음을 달콤하게 적셔주니 '내 귀에 캔디'다. 싸움 이야기 한다면서 무슨 캔디 타령이냐고? 싸움이라고 모두 피튀기는 전쟁만 있는 게 아니다. 규칙을 잘 연마해서 싸움하고 깔끔하게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도 있고 토론하는 싸움도 있다. 잘 싸운 싸움은 달콤한 캔디가 되기도 한다.
신현림의 시 '나의 싸움'은, 내 책『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와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생각비행, 2024) 를 쓸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내 마음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질문, 내 안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싸움을 응원하는 목소리로 읽는다. "삶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이 제목과 첫 문장의 힘이겠다.
딱 내가 복싱을 배우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를 망치려 나한테 덤비는 자가 있다면 싸워야 하는 것. 내가 살면서 누군가와 글러브 끼고 링 위에서 주먹 싸움할 일이 과연 있을까? 내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승부를 가릴 기회가 올까? 그건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대신 나는 매일 매 순간 싸움 속에 살고 있고 링 위에서 싸우고 있음을 본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펀치를 날리며 신현림의 싯구를 읊는다.
"나를 망치려는 것들과의 싸움이다.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나를 하찮게 여기는 것들, 나를 함부로 하며 내 존엄을 밟으려는 것들은 모두 나한테 KO패 당하는 거다. 자, 덤벼라!"
나의 싸움
신현림(1961~)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탈출기
천양희(1942~)
나는 오늘도 억울하게 매를 맞는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나는 너의 부속품이 될 수는 없어
나는 너의 덧붙이개가 될 수는 없어
서른 살의 오기 시퍼런 칼날 품고
원수같이 너에게로 쳐들어간 날
살려 줘, 살려 줘
외치던 아가리 찢어지고
눈깔을 빼어 버려
벼락이 떨어지고
암흑천지 웅크린 짐승처럼 돌아누웠지
나는 너의 노예가 아니야
팔려간 노예는 더욱 아니야
전신에 기름을 빼내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늪지대 구렁 속에
네 몸통 속에 처박힐 순 없어
나는 오늘도 기진맥진
네 폭력의 포위망을 탈출한다.
"싸움은 근처에도 가지 마."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넌 그 아이를 친구로 만들어 버려."
아이들 어릴 때 나는 이렇게 가르치는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