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말한다는 건 과연 좋은것일까?

찰스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을 읽고나서

by 꿈꾸는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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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리스마스의 캐롤」등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다. 산업혁명의 영국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노동계급과 귀족계급의 갈등도 나타나고 노동계급과 귀족계급 사이에 생산수단을 가지고 나타난 자본가계급이 새로 나타나면서 생긴 갈등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자,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이오. 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 살아가는 데는 사실만이 필요한 거요.......” 책의 첫 대사에 ‘사실’만을 강조한다. 왜 사실만 강조할까?

이 말투가 딱딱 하여 읽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속도 답답했다. 사실만을 가르치는 학교에 씨씨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다. 씨씨라는 이름이 있지만 20번 여학생이라고 부르며 이름을 꼭 애칭이 아닌 정식이름을 불러야 한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실 즉 모든 것의 정의를 배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루이자와 톰은 곡마단을 구경하다가 사실만을 가르치던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 난다. 과연 사실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올바른 교육일까?


신기한 것은 이 책이 쓰여 진 것이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산업혁명의 교육을 다루고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교육문제로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면서도 교육에 대해서는 최종의 대안이 없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을 배제하였기에 이렇게 교육에 대한 갈등이 여전히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너 인성에 문제 있어?”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어느 유투버가 유행 시킨 대사인데 그 말을 되풀이 하던 그 유투버가 정말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인성에 문제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그래드 그라인드의 아들이며 여기서는 건달이라고 일컬어지는 톰이다.


아버지에게서 사실만을 교육받아온 그는 누나와 결혼한 아버지의 친구 바운더비의 은행에서 일하다 건달처럼 도박에도 빠져 은행을 도둑질 하기 위해 선량한 스티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운다. 이런 아들을 공리주의적인 교육을 가진 아버지가 자신의 딸과 아들이 자신의 교육관과 다르게 자라는 모습에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아들을 도피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호소하며 아들을 도피시키는데 자신의 교육관대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비쩌’에게 호소하는 대사가 인상깊었다.


“비쩌”

“자네에게도 심장이 있나?”

“심장이 없으면 피가 순환하지 못하지요 선생님.”

“혈액순환에 관해서 하비가 입증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에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으심할 수 없을겁니다.”

“자네 심장이 동정시므이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겠나?”

“이성의 영향은 받지만 다른 것의 영향은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

“여기 그애의 누나를 보게, 우리에게 동정을 베풀게”

“선생님”


이 대화 장면에서 자신의 교육관이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그랜드그래이드의 모습이 상상된다.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자신의 교육관으로 잘못된 삶을 살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아플까? 또한 자신의 제자들 또한 그렇게 이성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이런 감성을 가르치지 않아도 곡마단의 딸로 태어난 씨씨는 자유로운 사고와 착한 마음씨로 이 그랜드그래이드 집안의 사람들을 도와준다. 씨씨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루이자와 함께 하지못했을 때 많이 안타까웠다.


루이자가 자신의 동생 톰을 위해서 이러저리 뛰어다닐 때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할때도 항상 씨씨가 옆에서 해결해 주었다. 아마 이들의 마음을 잘아는 이는 씨씨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또다른 커플이 있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않지만 가난한 노동자라는 이유로 이혼을 못하는 스티븐과 그를 사랑하는 레이첼이 있다. 스티븐은 자신의 주장을 단상에서 이야기하다가 이 동네를 떠나게 되는데 떠나기전에 루이자의 동생 톰의 제의로 은행주위를 둘러보고 떠나다가 은행의 돈을 훔친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이 책의 표지에 남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이 책을 수확까지 읽고 있을 때는 루이지와 하트하우스의 뒷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빨간 선이 그들의 동행이 잘못되었음을 예견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생각은 아마 레이첼과 스티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남자의 모자와 옷차림을 보아 노동자계급의 남성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는 불쌍한 커플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인생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지 안 벌어질지는 여러분과 나에게 달렸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난롯가에 앉아서 재가 하얗게 식어가는 광경을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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