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공간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아본 적 없는 몸이다. 차별과 혐오와 학대가 내 삶의 기본값이었다. 끔찍한 말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폐인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폭력적인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 때 혼자 24시간 365일 현실적인 불이익을 받아내며 싸울 수는 없다.
대신 나 자신과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겠다.
폭력적인 상황에 적응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체념하는 대신 내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겠다. 살아남기 위해 타협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항하겠다. 뛸 수 없으면 걸을 것이고 걸을 수 없으면 기어갈 것이다. 만약 굴욕적인 방식으로 타협해야 할 일이 또 생긴다면 살아남기 위해 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겠다. 반면 타협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끔찍한 결과가 나와도 도전해볼 만 한 일이라면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내겠다. 대신 무엇이 나를 실패하게 만들었는지 공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기적으로 돌아볼 것이다.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을 본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 내가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폭력이 내 삶의 기본값이 아니어도 되는 환경을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고 도전하고 듣고 쓰고 말할 것이다.
20살 때 시작한 고민이 이렇게 처음 글로 나온다. 아직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 많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고 경험할 내용으로 지금 쓰지 못한 부분들을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