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한석사 Sep 24. 2024

어린왕자 in SEOUL(#10 떡볶이의 매운맛)

여자는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머리칼은 마치 햇살을 잡아둔 듯 부드럽고 따뜻했다.      


알약을 받은 여자는 떡볶이와 튀김을 가득 담아 어린 왕자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테이블로 안내하며 젓가락 대신 포크를 주고 먹는 법을 알려주었다. 떡볶이는 매우니까 조금씩만 먹으라고 당부하면서.     


어린 왕자는 포크로 떡볶이를 찍어 조금 베어 먹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신나서 외쳤다.   

  

“엄청 맛있어요! 태어나서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마치 뾰족한 장미 가시가 둥글게 변해서 입안에서 춤추는 느낌이에요. 뾰족하지 않은 동그란 장미 가시가 내 입안 깊숙이 눌러앉은 듯해요. 화가 난 장미의 잔소리가 내 입안 구석구석을 채우는 것 같아요!”     


여자는 어린 왕자의 독특한 표현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정말 맛있어요. 벌꿀보다 더 달콤하고, 장미 가시보다 더 따가워요.”     


여자는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계속 어린 왕자를 지켜보았다. 어린 왕자는 튀김을 한 입 베어 물고는 감탄했다.     


“만약 떡볶이가 장미 가시가 만든 달콤함을 가지고 있다면, 튀김은 벌꿀의 달콤함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벌의 향기는 나지 않아요. 둘을 같이 먹으니 달콤함이 머릿속에서 녹아내려요. 몸이 떠오를 것 같아요. 떡볶이와 튀김만 있다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영영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도 몰라요.”    

 

여자는 그의 말을 들으며 지긋이 미소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양을 그려줄까?”     


어린 왕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양을 이미 가지고 있어요. 양이 한 마리 더 있으면 둘 다 굶어 죽을 거예요. 풀밭은 양 한 마리만의 것이어야 해요.”     


여자는 어린 왕자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물었다.     


“혹시 양이 꽃을 먹지는 않았니? 잘 때마다 덮개를 덮어줬어?”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장미가 양을 길들였어요. 장미는 똑똑해요. 그런데도 난 아직 장미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장미를 사랑할 줄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린가봐요. 꽃들은 참 모순덩어리라는 걸 알면서도 장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장미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해. 이 이야기를 다 기억하다니. 장미가 길들였으니 양에게 먹히지는 않았겠지? 그 말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     


그녀는 어린 왕자에게 말을 걸려 했지만,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멈추었다. 

    

“더 먹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어린 왕자는 여자가 돌아서서 카운터로 가는 것을 보며 떡볶이와 튀김을 계속 먹었다.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여자가 다시 돌아왔다.     


“B612호는 언제 돌아갈 거니?”     


어린 왕자는 배를 만지며 말했다.     


“배가 불러서 이제 B612호는 못 가요.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여자는 어린 왕자의 말에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라 너와 더 있을 수가 없어. 네 시간 후에 교대가 끝나는데, 그때도 여기 있을 거니?”   

  

어린 왕자는 말했다.     


“배가 부르면 난 어디에도 갈 수 없어요. 배가 부르면 난 눈이 멀어져요. 지금까지 보던 것들이 그대로 보이지만, 그것들은 눈 밑으로 사라져요. 어쩌면 눈 밑으로 사라지면서 뱃속을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네 시간 후에도 여기 있을 거예요.”     


여자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돌아서려 할 때 어린 왕자가 물었다.     


“네 시간이면 얼마나 긴 거예요?”     


여자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숫자가 지금은 1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3시를 가리키면 돼.”     


여자가 시계에 대해 설명하자 어린 왕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다란 시계 앞으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왔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을 따라가니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린 왕자는 밖으로 나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우와, 이제는 눈이 멀어지지 않을 것 같아. 난 이제 충분히 만족해졌어.”     


지나가던 아줌마는 어린 왕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황금빛 머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머리는 단순히 노란색이 아니라, 마치 반짝이는 금빛이었다.     


더 오래전이었다면, 누군가는 그 머리를 황금으로 착각하고 몰래 잘라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새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새들이 날아가는 곳은 떡볶이 가게가 있던 빌딩에서 멀지 않은 호숫가였다.

이전 09화 어린왕자 in SEOUL(#09 빌딩 안의 식당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