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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0. 2021

최 흑 오 7

단편 소설


7.


 “사진 빨리 되나요? 사진 얼마 만에 나오죠? 금방 찍을 수 있죠? 저희는 아주 급하거든요”라며 두 명의 여자 손님은 헐레벌떡 들어왔다. 나는 사진은 바로 나온다고 했고 거울을 보고 준비가 되면 카메라 앞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여자 두 명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털며 화장을 고치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선글라스의 여자는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려고 했지만 들어온 여자 두 명의 손님 때문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권사진을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받아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건네받을 때 본 여자의 손등에는 꽤 깊은 상처가 있었다. 어딘가에 찍힌 상처는 아니었다. 날카로운 것에 할퀴었거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에게 물린 것 같은 상처였다. 여자의 손가락은 길쭉하고 몹시 예뻤다. 손을 보자마자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등의 상처는 깊고 굳게 아물어 있었다.


 최흑오라는 이름의 여자는 계산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입에서 그다음의 어떤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으로 나에게 손님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어떻든 저 두 명의 여자 손님들이 나가고 나면 선글라스의 여자가 무슨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 명의 여자 손님은 이십 분이 넘어갈 동안 거울 앞에서 얼굴을 보고 있었다. 요즘은 운전면허증 사진도 여권사진규격처럼 바뀌었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여권사진 규격이 완화되었다고 말했지만 두 명의 여자 손님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머리가 여기까지 좀 길면 좋겠는데.”


 “라인을 좀 더 그릴까?”


 “입술은 어때?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옷을 여기까지(어깨 부분과 쇄골 부분) 내리면 더 괜찮지 않을까?”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과 옷에 대해서 사진 찍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보통 손님들이 거울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자신의 얼굴을 보는 시간은 아무리 길다 해도 몇 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들 역시 목적에 의해서 사진을 촬영하러 왔기에 빨리 사진을 받아서 가야 한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오랜 시간 동안 보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늘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 저 두 여자 손님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거울을 본다기보다 그저 거울을 보기 위해서 사진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글라스의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듯 다리를 꼬고 미동도 없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으니 허벅지 부분이 보였다. 운동을 아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30대 중반 밑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리를 꼰 허벅지에는 마치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트레이너 같은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허벅지에도 상처가 보였다. 어떤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긁힌 상처 같았다. 그렇게 보였다. 더 이상 선글라스의 여자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가는 어딘가로 빠져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벌써 4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자 두 명은 거울 앞에서 그저 자신들의 얼굴을 보며 만지고 있었다.


 “저, 손님들, 사진 안 찍으실 겁니까?”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자 두 명 중에 머리가 좀 긴 여자 손님이 얼굴을 돌려 나를 보며 “아니, 머리가 비에 젖어 좀 말린 다음에 찍으려고 하는데 안 되는 건가요? 빨리 가라는 말인가요? 대충 찍으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자 옆의 머리가 비교적 단발인 여자가 “손님에게 이래라저래라 안 되겠네. 인터넷에 올려야겠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저 들어올 때 급하다기에 빨리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50분이나 흘렀고 머리와 옷에 묻은 비는 전부 마르거나 없어져서 그렇게 말을 했을 뿐인데 죄송하다고 했다. 뒤에 말을 한 여자가 자신이 먼저 찍겠다며 배경지 앞으로 갔다. 하지만 운전면허증을 촬영하기에 부적합했다. 머리가 눈썹과 귀를 다 가리고 있었다. 나는 손님에게 운전면허증 사진 규정이 예전과 달라서 이렇게 촬영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여자는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척하더니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이렇게 찍어봐야 경찰서에서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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