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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4. 2024

그녀의 도서관 4

단편소설


4.


도서관을 나와서 근방을 좀 걸었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허기를 때워야 할 것 같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컵라면에 물을 받았다. 앉아서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3분이면 된다. 컵라면이 익기를 바라는 3분은 긴 시간이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시간은 늘 나를 짓물러 온다. 시간에 짓눌린 곳은 상처가 나고 제대로 낫지 않아서 흉터가 생겼다. 흉터는 흉터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통을 주었다. 


편의점 유리 앞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왔다. 까마귀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까마귀는 조금씩 움직이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까마귀가? 고개를 돌린 까마귀는 나를 바라보았다. 까마귀의 눈을 제대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까마귀의 눈동자는 전부 검은색이다. 마치 밤 같았다. 짙은 밤.


이내 도로와 거리에 까마귀들이 내려왔다. 차들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까마귀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클락션을 울리고 소리를 질렀다. 혼란스러웠다. 까마귀들은 대략 100마리는 되어 보였다. 짙은 밤이 깊어지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심지에 이렇게 까마귀가 많이 모이다니. 좋은 풍경이었다. 까마귀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나오지 않거나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도심지에 인간이 보이지 않으니 기묘했다.


까마귀는 흉조라는 의미 때문에 못생겼다는 인상이 있지만 자세히 보니 멋지게 생겼다. 이만큼 멋지게 생긴 새가 또 있을까. 까마귀들은 도로와 거리를 장악하고 가끔 날개를 움직였다. 그때 한 마리가 날개를 크게 펼치니 도미노처럼 다른 까마귀들도 날개를 폈다. 크악크악. 까마귀들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를 내버려 둬!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에게 119에게 연락하라고 했지만 아르바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119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갔다. 그러더니 신호가 먹통이 되었다. 고립이다. 도심지에서 이렇게 고립이 되었다. 편의점에 고립되어서 다행이다. 편의점 음식을 야금야금 먹으며 버티면 된다. 나는 친구가 없어서 누군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는다.


아, 나에게는 '조'가 있다. 하지만 조와 연락은 하지 않는다. 조는 어른이 되면서 이 도시를 떠났다.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조가 있는 곳에서 나에게 편지가 날아올 뿐이다. 이런 세상에 편지라니. 그러나 조의 편지는 읽는 재미가 있다. 조의 편지가 재미있는 이유는 두서없이 떠들어댄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조가 일부러 소설처럼 적지는 않았다. 편지를 쓰고 나면 소설처럼 보였다. 어쩌면 진짜 소설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안에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많다. 까마귀들 때문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시간의 짓눌림을 받게 되면 그렇게 처연해진다. 누구도 그들 자신을 도우러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고립되어서 죽는다면 편의점 음식을 다 먹고 뚱뚱해져서 죽을 것이다. 행복한 죽음이다. 나는 웃었다. 죽음이란 불행 그 자체지만 행복하게 죽는다면 그만큼 멋진 인생이 있을까. 탄생에는 선택이 개입을 하지 못하지만 죽음 선택 할 수 있다. 


그때 까마귀들이 컵라면의 냄새를 맡고 일제히 편의점 유리 쪽으로 날아왔다. 탁! 하고 책을 덮었다. 편의점에 라면을 먹으며 보라고 놓은 동화책이었다. 까마귀의 이야기였다. 이런 동화가 있었나. 동화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행복하게 끝나지도 않는다. 프란다스의 개가 그렇다. 네로는 얼어 죽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루벤스의 그림도 보지 못하고, 아로하도 만나지 못한 채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얼어 죽는다. 동화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얼어 죽는 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컵라면은 튀김우동이다. 튀김우동의 국물이 마시고 싶었다. 짭조름하고 시원한 튀김우동 국물이 좋다. 아직은 날이 쌀쌀하고 춥다. 튀김우동이 어울리는 날이다. 그녀가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튀김우동에 물을 붓고 그녀는 이가 없이도 먹을 수 있다. 컵라면은 정말 좋은 음식이다. 단순하고 맛있고 배까지 부르다. 컵라면 그런 거 먹지 말고, 같은 말을 하는데 컵라면만큼 나를 만족시키는 음식은 없다. 불고기? 치킨? 다 흥이다. 이렇게 컵라면을 먹고 쓰레기는 편의점 휴지통에 버리면 깔끔하다. 내일은 그녀가 나를 봐주기를 바란다.



내가 이 도서관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적요해서 책을 읽고 있으면 활자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눈으로 활자를 읽는데 소리가 들린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 이 도서관은 전체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을 쉬는 게 느껴진다는 건 불행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도서관 즉 시립도서관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 줬지만 이제는 도심지 한 편에서 소멸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도서관이 숨을 쉬는 건 힘겹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힘겨워하는 건 사람들에게 잊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인간과 같다. 인간도 젊은 시절 잘 나가지만 분수령이 끝나고 내리막길을 걷다가 나이가 들면 조용하게 죽을 날을 기다린다. 조용하게 죽을 수 있는 삶은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다. 대체로 죽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죽는다. 늙음으로 해서 오는 노화 현상이 그렇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오래된 세포와 평생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심장이 미약하게 생명을 유지할 뿐이다. 각종 질병, 또는 사고로 죽는다. 사고로 즉사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본인에게도 무엇보다 가족에게 큰 행운이다. 인간의 죽음이란 그렇다. 하지만 만약 사고를 당했어도 살아난다면, 크게 다쳤다면 이후 문제가 산적해 있다.


도서관도 이 세계 여기저기서 위용을 떨쳤다. 이제 사람들은 도서관이 뭘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검색으로 편하게 내용을 알 수 있다. 굳이 일일이 활자를 따라가며 읽을 필요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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