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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상후의 삼촌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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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상후의 삼촌


상후가 가방을 열어서 무엇을 꺼내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조용하고 조금은 음침한 곳에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씩 따서 입으로 쭉쭉 빨아먹었다. 먹고 나면 모두 인상을 썼고 으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마치 갱단의 하수인들이 일을 치르고 난 뒤 약을 받아서 몰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후는 늘 가방에 보약 4, 5개씩 넣어 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음료처럼 나누어 주었다. 처음 득재가 상후의 보약만 보면 하나 달라고 해서 쭉쭉 빨아 마셨다. 아주 맛있게 마시기에 너도나도 하나씩 달라고 해서 마셨는데 맛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쩐지 먹고 나면 몸이 튼튼해지는 느낌이랄까. 총명해지는 느낌이랄까. 부잣집 도련님이 먹는 보약은 다르겠지.


그렇게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 야외 화장실 뒤편의 양궁부로 통하는 좁은 길에서 조르륵 앉아서 보약을 빨아 먹었다.


“우리 삼촌이 온대. 잘하면 벤츠를 탈 수 있어”라고 상후가 말했다. 우리는 보약을 쪽쪽 빨아 먹으며 벤츠보다는 상후의 삼촌을 만난다는 것에 더 흥분했다. 상후의 삼촌은 상후에게 일탈 같은, 외계에서 온 존재 같은 사람이었다. 같이 있으면 무척 재미있다고 상후에게 자주 들었다.


상후에게는 삼촌이 한 명 있다. 상후아버지와 나이 터울이 나는 동생이다. 상후의 삼촌은 우리를 몰랐지만 우리는 삼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늘 만나고 싶은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엉뚱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서 늘 혼이 났다고 했다.


삼촌은 국민학교 시절, 용돈을 받으면 뭐라고 써야 하는지 ‘다’로 끝나는 5자의 말을 쓰라고 담임이 말했다. 아이들 대부분 고맙습니다, 감사한다고 적었는데 삼촌만 ‘뭘 이런 걸 다‘로 적어서 담임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 절정이 군대 갔을 때라고 했다.


삼촌은 만만한 엄마에게 전화해서 총을 잃어버려서 사야 한다고 돈을 부쳐 달라고 한다든가, 선임자의 워커를 자신이 신고 나갔다가 망가트려서 다시 사야 한다는 식으로 늘 돈을 타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상후의 아버지, 삼촌의 형은 웃으며 모른척했다. 한 번은 상병 때 동기들과 일박이일로 외박을 나갈 계획을 잡는데 비용이 60만 원이 들었다.


그래서 각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삼촌은 당시 운전병이었는데 전차를 몰다가 전차의 바퀴를 전부 고장 냈다고 했다. 총 60만 원이 수리비로 나왔는데 자신이 운전병이라 50% 할인해서 30만 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그때 상후의 아버지가 전화를 낚아채 소리를 지르고 혼을 내면서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상후의 삼촌은 운전병을 하면서 군견을 돌보는 보직도 있었는데 군견이라고 전부 용맹스럽고 날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삼촌은 느끼게 되었다. 이름이 ‘용맹이’라고 불리는 군 셰퍼드는 나비만 보면 그렇게 따라다니며 놀려고 했고 삼촌도 용맹이와 함께 들판으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같이 나비를 따라다니며 놀았다.


덕분에 매일 상사에게 혼이 났고 얼차려를 받다가 결국 용맹이는 다른 군인에게 넘어갔다. 용맹이가 넘어가는 날 삼촌은 슬펐다고 했다. 상후는 삼촌에게 친구들을 벤츠에 태우고 싶다고 명절 때만 되면 졸랐고 삼촌이 허락해서 우리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벤츠? 벤츠가 뭐지?” 우리는 사실 벤츠가 얼마나 좋은지, 어떤 차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르망이 가장 멋진 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기판도 키트처럼 전자식이고 그저 좋아 보였다.


슈바빙 주인 누나에게 벤츠에 관해서 물었다.


“좋은 차야, 견고한데 예쁘기까지 해”라고 말해 주었다. “르망보다 좋아요?” 기철이의 물음에 슈바빙 주인 누나는 미소만 지었다


상후의 삼촌은 덩치가 컸다. 키도 컸고 몸집도 상당했다. 기개가 있고 호방했다. 상후는 아버지보다 삼촌을 더 닮았다. 삼촌은 벤츠를 태워 준다며 우리를 데리고 주차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효상은 오늘도 빠졌다.


상후의 말로는 물 건너온 외제 차에 국산 차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닷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차라고 했다.


“주차장은 여긴데요?” 기철이가 말했다. 삼촌은 웃으며 차가 좀 커서 여기에는 주차하지 못해서 길가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차가 크데.” “와 얼마나 클까?” 우리는 갖은 상상을 했다. 영화에서 본 큰 자동차의 모습을 떠올렸다. 길가에 나가니 삼촌이 몰고 온 벤츠가 떡하니 있었다.


삼촌이 타고 온 벤츠는 진짜 컸다. 몹시 컸고 아주 컸다. 지구에서 가장 큰 벤츠였다. 이건 키트에 나오는 골리앗이었다. 삼촌이 운전하는 벤츠는 25톤짜리 대형 트럭이었다.


상후와 삼촌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삼촌은 우리에게 올라타라고 했다. 올라타는 것도 힘겨웠다. 개구리가 제일 손쉽게 올라탔다. 개구리는 생각 외로 가벼웠다. 올라타 보니 기분이 완전 달랐다. 이건 마치 건담의 조종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수십 개나 되는 버튼에 일반 자동차보다 많은 계기판과 하늘에 붕 떠 있는 느낌이 한 마디로 경이로웠다. 벤츠 안에는 메탈리카를 비롯한 메가데스, 바쏘리, 판테라 등 효상이가 좋아할 만한 강한 록 음악이 가득했다. 삼촌은 메탈리카의 제임스와 메가데스의 데이비드 머 스테인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흥미로웠다.

삼촌은 기어를 넣고 핸들을 돌렸다. 마치 하늘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강력한 록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매일 달린다면 얼마나 멋질까. 굉장한 기분이었다. 도로를 미끄러져 빠져나가면서 삼촌은 음악을 틀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노래는 브레드의 if가 나왔다. 우리는 어쩐 일인지 말도 하지 않고 브레드의 노래를 집중해서 들었다. 상후가 조수석에 앉았고 그 옆에 개구리가 앉고 우리는 뒤에 침대처럼 보이는 곳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태아처럼 몸을 말고 싶었다.


25톤의 강력한 트럭 안에서 듣는 if는 어떤 기시감 같은 것을 가지게 했다. 차들이 지나쳤고 건물이 지나갔다. 그 속에서 우리는 꼭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는 것만 같았다. 삼촌은 우리를 태우고 긴 도로를 오랫동안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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