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먹다 보니
군고구마의 계절이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후후 불어 먹는 맛이 좋다. 제대 후 그해 겨울에 군고구마를 팔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팔아치웠다]가 맞는 말처럼 엄청나게 팔렸다.
군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동네에서 장사를 했는데, 주위가 아파트 단지와 어린이 미술 학원 같은 학원이 가득하고 현대중공업 근처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줄까지 서서 군고구마를 사 간다는 게 지금생각하면 신기할 뿐이다.
저녁 몇 시간 잠시 장사를 했는데 하루에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 벌었다. 낮에 농산물 시장에서 군고구마 두 상자씩 떼 와서 그날 저녁에 다 팔아치웠다. 몇 번 가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 농산물 아저씨에게 늘 좋은 고구마를 두 박스씩 구입을 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고구마를 하루 저녁에 다 팔아 치우나?라고 물었을 때 [잘 모르겠어요. 자정이 되기 전에 다 팔려요] 군고구마를 파는 장소가 동네 서점 문 앞이었다. 후배의 아버지 서점 앞이라 장사를 허락했다. 그리고 책도 마음껏 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장갑을 껴도 손이 까맣게 탄 끼가 묻었고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고구마를 들고 가는 바람에 책은 전혀 읽지 못했다.
제대를 하기 전 군대에서 맞이한 두 번의 겨울에 나는 카드병력으로 차출되어서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만드는 것으로 모든 훈련과 내무생활에서 열외였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디자인이 간단하면서 예쁘게, 여러 수백 장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나 쉬운 일도 아니었다.
샘플링만 잘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하다. 그래서 12월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서 고구마를 사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카드가 예쁘니까 카드만 사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고구마는 11월부터 팔기 시작해서 2월까지 팔았다. 몇 개의 샘플링 카드를 만들어서 군고구마통 위에 죽 걸어 놓고 원하는 카드를 고르면 그걸 주었다.
그리고 고구마를 팔면서 음악을 틀었다. 웸이나 머라이어캐리의 캐럴을 비롯해서 많은 캐럴을 틀었다. 터보의 캐럴은 신났다. 어린이 학원이 많았는데 어린이 손님이 고구마 하나를 달라기에 하나를 쥐어 줬는데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밤에 아이의 엄마가 와서 미안하다며 만원 어치를 사갔다.
그런 식의 해프닝이 거의 매일 일어났다. 아파트 단지 근처라 중공업에서 퇴근하는 아버님들이 연말에 거하게 한잔 후 1, 2만 원어치씩 사갔다. 잔돈은 됐다,라고 하는 아버님들도 많았다. 또 고구마를 사러 왔다가 대기를 해야 하면 아파트 주소를 받았다가 고구마를 배달했다. 암튼 그때에도 열심히 달렸다.
좀 더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는 근처 학원의 예쁜 선생님들이 고구마를 사러 오면 주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고구마도 거의 다 팔리고 사람도 줄어들어서 도와준 친구들과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매일이 파티였다. 그렇게 마시다가 필 받으면 근처가 바닷가이니 바닷가 술집으로 달려갔다.
2월까지 군고구마를 팔아서 번 돈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전국(까지는 아니지만) 일주를 했다. 그러다가 강릉에 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https://youtu.be/Lbhg3E7yc3s?si=AxWmruCi1N3haKx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