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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Aug 19. 2024

도서부종이접기 클럽, 다꾸다꾸

종이를 접으면 만나는 새로운 세계

학교괴담

"밤 12시가 되면, 학교에 있는 동상이 살아서 돌아다닌대."

어릴 때, 어느 학교를 가도 비슷한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순신 장군, 책 읽는 소녀나 오누이 상. 그들은 밤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다닌다는 둥 학교 괴담들이 떠돌곤 했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많지만 이 글을 읽다가 도망갈지도 모를 독자를 위해 여기까지.)


비 오는 날의 학교. 도서부종이클럽 아이들이 도서관에 모여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비가 오면 으스스한 학교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최적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불을 꺼놓고 어둑한 교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어깨에 올린 손에 놀라 기겁하고 놀라 소리를 질렀던 기억.



종이접기 클럽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서 죽은 귀신 이야기를 하는 세연, 소라, 모모는 도서관 종이접기 클럽 회원들이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종이학을 접어달라고 부탁하는 정체 모를 여인. '종이학 귀신'과  나무 아래 서있는 교복 입은 여자 아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섭지만 기대되는 전개. 여름에 딱 읽기 좋은 괴담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읽기 시작했다(가 무거워지고 아픈 이야기에 가슴이 숙연해지는 책이다.)


어린 시절 종이학을 천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너도 나도 학종이로 접어서 유리병에 넣곤 했다. 짝사랑하던 친구와 사랑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친구도 있었고, 군대 간 남자친구가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게 해달라고 종이학을 접는 사촌 언니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어떤 소원을 빌며 종이학을 접었더라? 종이학 접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닌데, 반복하며 접다 보니 세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쉽게 접는 걸 보면 반복학습의 힘이 대단함도 느낀다.


보기보다 쉽지 않은 종이접기는 처음엔 서툴지만 계속하게 되면  손에 익고 잘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그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책 속에서 이미 잘하게 된 친구들(소라)이 잘 못하는 친구(모모)와 함께 다시 종이접기를 하면서 디딤돌이 되어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지는 장면도 참 좋았다.


P53 고래 접는 법은 처음에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접다 보니 중간에 난관에 부딪혔다. 종이접기는 항상 그렇다. 쉬워 보이는 것도 직접 해 보면 의외로 어렵다. 그런 점은 요리와도 비슷하다. (중략) 그러나 한 번 감을 잡고 하는 법이 손에 익으면 어렵던 것이 쉬워진다는 것도 요리와 종이 접기의 공통점이다.

P56 평면에 불과한 종이가 손으로 접는 것만으로 입체가 되어 고래 모양이 되고, 또 그것이 고래 모양 그림자를 만들다니, 나에게 그런 일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종이학의 기원

어린 시절에 몰랐던 종이학의 기원이 일제 강점기 때라고 한다. 학도병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접기 시작한 '오리가미 클럽'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종이접기는 애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그 기원이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놀라웠다. 종이접기는 일본에서 소학교에서도 교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일본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며 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에 나간 청년들을 위해 학생들이 종이학을 끈에 엮어서 부적처럼 전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이 승전을 기원하며 접었던 종이학 접기가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랫동안 접어왔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며 접는 종이접기를 탓할 바 아니지만 왠지 속상하고 씁쓸한 마음은 감추기 어렵다.  


종이학귀신

사람들은 광활한 우주 앞에 작은 존재로, 늘 거대한 존재에게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빌고 바라며 꿈꾼다. 작은 존재로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에. 그렇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은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전쟁터에서 나의 남편이, 나의 아들이, 나의 학생이, 나의 친구가 돌아오길 바라는 애절하고도 처절한 마음. 그토록 아픈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책 속에서라도 수이가 1930년대로 가서 수이, 혜민, 삼정이를 만난 것처럼 그 시대의 나였더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을까? 하고 그 시대의 그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만나게 되는 듯하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아이들은 '종이학 귀신'에 궁금증과 의문을 품고 있다가 복도의 일렁이는 하얀 벽 과거와 연결되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1937년. 그 시대의 살던 종이접기부 클럽 , 오리가미부 클럽의 소녀들을 마주치게 되면서 과거와 미래가 만나게 된다.



일심상조불언중(一心相照不言中)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왔던 '일심상조불언중(一心相照不言中)'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한 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힘을 주던 그들의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는 글귀 같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서로를 지지하는 가족의 관계도, 과거와 미래를 서로 비추며 과거는 사라지지 않은 채 조용히 뒤를 지키고 미래는 앞서 나가기보다 과거를 바라보며 함께 나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인 다이어리에도 적어놓을 만큼 기억하고 싶은 말이 되었다.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

청소년 책이라 가볍게 접근했다가 아픈 역사가 나와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묵직해지고 숙연해졌디. 종이접기라는 소재로 역사와 이어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닌 그곳에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학생들의 삶. 은반지를 낀 거울회 단원들. 어리지만 나라를 위해 애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


지금의 세연, 모모, 소라가 만난 1937년의 수이는 과거가 미래와 연결되어 있듯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듯하다. 아픈 역사를 겪어내며. 그 당시 돌아온 혹은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분들을 간절히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 친구들, 학교 선생님도 그곳에 살아 있을 것이다. 희미해진 역사, 잊혀가는 기억에 불을 밝혀본다. 늘 기억되기를 바라며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보면서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과거는 과거로 그치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다.




보기보다 쉽지 않은 종이접기는 처음엔 서툴지만 계속하게 되면  손에 익고 잘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그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미 잘하게 된 친구들이 잘 못하는 친구와 함께 다시 종이접기를 하면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지는 장면도 책을 덮으며 떠올려본다.



다꾸의 매력

다꾸를 하면 좋은 것은 단순히 꾸민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곱씹게 된다. 지금과 과거가 연결되듯 빛바랜 신문을 오려 붙이고 뜯어내기도 하며, 내가 읽었던 책의 느낌을 살려내려 애써본다. 희미해진 역사, 잊혀져 가는 기억에 불을 밝히라는 뜻으로 촛불도 켜보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종이 접기에 담아 비행기에 날려 보낸다.


오리고 자르고 붙이는 동안 내 생각도 덧붙이며 다시 읽게 되어서 참 좋다. 다꾸다꾸(자꾸자꾸) 다꾸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나의 독서 다꾸를 통해 더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이 읽고 역사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길 바라본다. 책 읽고 다꾸해보기도 도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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