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에서 <스발바르의 순록>의 미칼과 로리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율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갔던 길.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두려움 속에서 헤치고 꺼낸 용기. 어른들이 숨긴 추악한 진실을 찾아내는 용기를 보여준 로리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찡했다. 우리에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여서 말이다.
강경수의 <눈보라>는 희미하고 처절한 슬픔이다. 그곳으로 도망치듯 떠난 북극곰이 사라졌으니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 찼던 책.
<스발바라의 순록>을 읽으며 <눈보라>를 떠올렸던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로 연결되어 있어서였을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 발견한 희망처럼 <눈보라>에서도 눈보라(북극곰의 이름)가 끝내 살아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닿은 까닭이기도 했다.
기후 위기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북극곰이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람들이 사는 마음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 물고기와 물범을 잡아먹던 북극곰은 기후 변화로 갑작스레 개체수가 늘어난 순록을 잡아먹는 기이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 그들의 삶.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놓고 사람들은 오히려 북극곰이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공격하고 내쫓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고 슬퍼진다.
눈보라가 사람들의 마을로 내려와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사랑받는 판다곰을 신문에서 발견하고 변장했을 때 사람들은 판다로 변장한 눈보라를 엄청 귀여워해주며 사랑해 주었다. 먹이도 주고, 돌봐주고 애정을 듬뿍 쏟았다. 사람들의 다정스러운 손길도 길지 않게, 북극곰이 것이 탄로 나자 사람들은 단숨에 태도를 바꾸게 된다.
그를 향한 사랑의 눈빛은 눈보라를 향해 총을 겨누고 쫓아내게 된다.
눈보라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삶의 터전을 잃고, 먹을 것도 없는 눈보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눈보라 속으로 사람들의 총을 피해 달아난 눈보라는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건 아닐까?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러다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공룡 시대의 공룡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책 속에서 북극곰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마음은 아니길 바라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스발바르의 순록이 북극에서 북극곰을 만나면 맹수처럼 달려들고 쫓기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길 바란다. 누구나 삶 속에서 치열하겠지만 적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다꾸 안에서 눈보라는 지금의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창을 두드리며 이렇게 외친다.
"나, 돌아갈래!"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노랗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이 떠오르길 여전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스발바르의 순록과 한 장으로 연결된 눈보라 다꾸다꾸. 북극곰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팝업으로 꾸며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