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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Mar 26. 2023

깐돌이, 초이, 행운이, 뚱이

내가 첫 번째로 키운 강아지의 이름은 ‘깐돌이’였다. 시장에서 오천 원에 부모님이 사 온 얼룩무늬 잡종견이었는데, 내가 8살 때 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니 부모님이 사주신 선물이었다. 강아지가 있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제때 밥을 주거나, 강아지 집 주변을 청소하거나,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시켜주는 게 귀찮았고, 그것들은 모조리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부모님은 내게 몇 번이나 내가 키우고 싶다고 하였으니 내가 책임을 맡아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깐돌이는 그런 나보다 부모님을 더 따랐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깐돌이가 갑자기 사라져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강아지를 잘 키우지 않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고 하셨다. 부모님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도 깐돌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깐돌이를 찍은 사진이 한 장 없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으로만 너를 기억할 뿐이다. 나는 정말 못난 주인이었다.


두 번째로 키운 강아지는 12살쯤 기른 ‘초이’였다. 페키니즈견이었는데, 부모님의 지인이 기르던 강아지가 갈 곳이 없어 맡아 길렀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깐돌이를 예고도 없이 보냈던 적이 있어, 슬픈 마음에 초이를 대했던 기억이 있다. 초이에게 잘해주면 어디 있는지도 모를 깐돌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했고, 어느 날 부모님의 사정 때문에 초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모님께 사정하고 졸라봐도 소용이 없었다. 초이가 떠나던 날, 학교에 있던 나는 믿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이나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하여 혹시 지금 갔냐고, 정말 보냈냐고 물어봤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역시 빈자리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간 생활을 못 할 정도로 슬펐지만 깐돌이가 사라졌을 때만큼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고된 이별이었고, 이미 한 번 그래본 적이 있었으니까.


세 번째로 키운 강아지는 15살쯤 기른 ‘행운이’였다. 고모가 기르던 시츄견이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마지막을 지켜주었던 강아지였다. 우리와 몇 년을 같이 살다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서 떠났는데, 자리에 누워 허여멀건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나를 보는 그 눈에 긴 시간 동안 말하지 못했던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슬프긴 했어도, 마지막을 함께 해 후회되는 것은 없다.


네 번째로 키운 강아지는 17살쯤 기른 ‘뚱이’였다. 황색 잡종견이었는데, 어떻게 키우고 떠나보내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최근이었음에도 그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덜 받기 위해 항상 헤어짐과 망각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뚱이도 어느 날 부모님에 의해 갑자기 사라졌는데, 떠난 날 나는 부모님께 화를 내지도 않았고, 슬픔에 일상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런 갑작스러운 이별이 익숙했다. 모든 만남은 잠깐 머물렀다 평생 떠나는 것임을 나는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 10년이 넘게, 나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고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만남의 기쁨에는 항상 그보다 더 크고 긴 이별의 슬픔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언젠가 내가 못 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모습으로 죽었겠지만, 나는 그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거리에서 비슷한 강아지가 다가오면 마음속으로 ‘혹시 깐돌이니?’ ‘초이니?’ ‘뚱이니?’하고 묻는다.


기적같이 너희들이 살아있어서 나를 알아보고 달려오는 상상을 한다.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러고 뻔뻔스럽게도, 그래도 너희가 마지막 순간에 나를 떠올려 주진 않았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사랑은 결국 슬픔과 두려움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만남보다도, 그 뒤에 펼쳐진 이별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다. 나의 꿈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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