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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맑음 Aug 14. 2024

[로맨스소설]x의 자서전 2화

2화


그해에는 연수연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있었다. 고 2의 여름이었다. 연수연은 당시 학생회장이었고 학교는 방학 중이었지만 소녀는 학생회실에 들러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았기에 먼지 내려앉은 책상 위에 숨이 흩어지자 먼지는 공기 중으로 떠올라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작게 콜록콜록 기침하면서도 지지 않고 투덜거렸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부학생회장이 한 번도 학생회실에 온 적도 없고, 나랑 인사도 안 해 본 것이 말이 돼?”


연수연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짧은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뾰로통한 얼굴엔 화장을 따로 하지 않아도 생기가 과즙처럼 흘러내렸다. 소녀는 책상 위에 올려진 유일한 종이인 부학생회장이라고 불리는 남자애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한새벽, 이름은 참 예쁜 새벽아. 너 직무 유기라고 들어봤니?”


이럴 거면 왜 후보로 등록을 한 것일까.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서 전교생 앞에서 발랄하게 춤까지 추었던 연수연에게 치욕적이 되게도 한새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후보였다. 그런데도 떡하니 부회장으로 선정되었다.


“누가 가만히 있는 한새벽한테 칼이라도 들이밀면서 협박한 거야? 이게 정상이야?”


연수연은 이번엔 책상 위에 손을 얹고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구겼다. 소녀는 예의를 아는 여자였고, 굳이 방학에 나와서 투덜거리는 이유는 학생회실을 혼자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회의 다른 멤버들이 있기에 소녀는 늘 침묵을 지키며 누가 뭐라고 해도 ‘사정이 있겠지.’라고 말하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학교로 향하는 아침에는 분명 날이 맑았다. 정문에 도착하니 후드득 소나기가 쏟아져서 뛰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내리던 비는 이제는 부슬비로 바뀌어있었다.


연수연은 답답함에 푸흐하고 숨을 몰아쉬면서 창문을 가린 커튼을 열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부슬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학교는 양기에 찬 소녀 소년들이 언제 존재했냐는 것처럼 조용했다.


“한새벽, 개새끼야!! 나한테 왜 이러냐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대나무 숲에 외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부슬비를 뚫고 시원하게 고함을 내지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연수연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으며 키득거렸다.


‘딸 국.’


연수연은 흠칫 놀라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는 창문 밖에서 들려왔다. 키가 크지 않은 연수연의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위치에 난 창문은 천장까지 닿아있었다. 그 소리는 꼭 사람이 딸꾹질하는 소리 같았다.


“...누구, 누가 있나요?”


연수연의 얼굴이 점진적으로 달아올랐다. 잘 차려입은 교복의 아래, 목덜미 부근에서 시작된 붉은 반점은 어느새 그녀의 동그란 콧방울까지 올라왔다. 부끄러웠다. 연수연은 밝고 근엄한 학생회장이었다. 적어도 소녀는 그렇게 믿었다.


기름칠하지 않은 낡은 로봇처럼 저도 모르게 삐그덕거리며  목을 움직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숱이 풍성한 검은 머리는 부슬비에 젖어있었다. 하얀 피부색은 추위 때문인지 창백해 보였다. 놀란 것인지 이쪽을 올려다보는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자세가 엉성한 이유는 급하게 숨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연수연의 시선은 이번엔 비를 겨우 가릴 정도로 드리운 학교의 난간을 바라보았다. 아마 소년은 저 조그마한 공간에서 비를 피하고자 하였을 것이고 연수연이 내지른 갑작스러운 외침을 듣고 다급히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별거 아닌 해프닝이다. 평소 연수연이라면 내가 스트레스받는 일이 좀 있었다 설명하고 상대가 비를 피할 수 있게 학생회실로 들어오라고 했을 것이다. 상대가 방금까지 욕하고 있던 잘생긴 한새벽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망했다.’


연수연은 어색하게라도 웃기 위해서 노력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비실거리며 웃는 모습이 평소와 달리 병약해 보이기 까지 했다. 한새벽의 빛조차 흡수할 것처럼 사연 있어 보이는 검은 눈망울이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연수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서 반가움을 전했다. 첫 만남에 개새끼라고 욕을 한 것 치고는 친근한 몸짓이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한새벽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아, 안녕. 나는 연수연이라고 해.”


한새벽은 주저앉은 자세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수연은 난감함에 잠시 미간을 모았다가 이내 돌아섰다. 그리고 사물함에 처박혀있던 수건을 꺼내서 창가로 돌아왔다.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한새벽이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밖에 비가 많이 왔는데 계속 여기 있었어? 안으로 들어올래?”


겨우 제 페이스를 찾았다. 내민 손에는 수건이 들려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한새벽은 이내 연수연의 허리 위치에서 시작하는 창틀에 긴 다리를 올려서 뛰어올랐다. 간단한 몸놀림으로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선 한새벽은 낯선 학생회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연수연의 손에서 수건을 받아서 들었다.


머리를 터는 모습이 커다란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소년이 지나치게 잘생겼기 때문이다. 듣기론 성격도 나쁘지 않다고 하던데 왜 부회장으로 당선씩이나 되어서도 의무를 멀리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춥지? 따뜻한 차라도 줄까?”


연수연은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제 집안처럼 편안해 보인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시멜로가 둥둥 뜬 코코아를 타기 시작했다.


한새벽은 어색한 것처럼 소년이라기엔 커다란 손으로 목덜미를 쓰다듬다가 회의 테이블로 보이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끼워진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이거, 마셔봐.”


연수연은 실수한 것을 만회하듯 평소보다 과장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새벽이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차갑게 식었던 손바닥에 따뜻한 머그잔이 쥐어주니 그제야 추위에 떨었던 것이 생각났다.


‘고맙다고 하겠지. 그럼 미안하다고 하자.’


연수연은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한새벽은 머그잔을 손에 든 채로 아직 덜 자란 남자의 얼굴을 해서인지 잘생겼지만 가녀려 보이는 그 얼굴로 연수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냐? 웬 코코아. 그리고 냄새나.”


한새벽은 제가 머리를 닦아냈던 사물함에 처박혀있던 수건을 책상 위로 던졌다. 연수연의 미소에 금이 갔다.


‘성격 좋다며. 왕자님이라며.’


입가가 제멋대로 떨리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겨우 참는 이유는 제가 먼저 욕을 했기 때문이다. 한새벽이 저에게 좋은 첫인상을 가지지 못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참아내고 다정함을 가장하여 속삭였다.


“아, 미안. 그리고 보니 그 수건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네. 넌 한새벽이지? 만나서 반갑다. 나는 연수연이야. 내가 학생회장이야.”


연수연은 손끝까지 신경을 써서 가다듬은 내 하얀 손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한새벽은 한참이나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슬로우모션을 건 영상처럼 느리게 보이는 태도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1초, 2초…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하는 것이 이토록 시간이 걸리는 일이던가. 연수연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겨우 닿은 손은 비를 맞아서인지 조금 축축했고 떨고 있었다. 곧이어 들린 얄미운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오래도록 비를 맞고 있었을 한새벽을 가엽게 여겼을 것이다.


“자랑이냐? 언제부터 학생회장이었다고 입 열 때마다 잘난 척이야?”


‘오호라. 이토록 삐뚤어졌다니. 얼굴이 아깝구나.’


‘적어도 부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한 번도 학생회실에 오지 않았던 너만 할까?’


참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달리 뾰족한 말이 머리를 채웠다. 손을 마주 잡았던 친근한 동작에 무색하게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날이 서 있었다.


‘얼굴값 한다는 게 이런 건가. 아니면 집이 좀 산다고 잘난 척 하는 건가?’


못된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자격지심은 없었다. 연수연도 한새벽에 못지않게 아주 예쁘고 좋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삐뚤어진 소년과 달리 연수연은 천성이 다정한 사람이었기에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비에 젖었기 때문에 구불거리는 소년의 머리를 친근감을 담가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웃었다.


“그냥 나를 모를까 봐 이야기한 거야. 아침부터 계속 거기 서 있었던 거야? 신경이 예민해졌을 텐데 배려 못 해서 미안해.”


사람을 마주 보는 검은 눈은 빛을 흡수할 것처럼 새파랗게까지 보였다. 똑바로 마주친 시선에 아직 소년임에도 키가 큰 소년이 보였다. 아직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연수연은 소년에게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밖에는 연신 부슬비가 내렸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소년의 눈이 연신 그 떨림을 바꾸었다. 깊은 사연을 담은 것 같은 눈망울이었다. 그에 비하면 아직은 햇살처럼 맑은 연수연은 한치의 떨림 없이 소년을 마주 보고 있었다.






연재의 즐거움은 독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소설]장르가 새로 생겨서 참 기쁘네요.

본래는 긴 장편의 판타지 소설을 연재하고 싶었지만, 우선 로맨스 소설로

우리의 만남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재회차는 제 예상으로는 40화 분량이지만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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