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9
C군과의 첫 만남은 협업 회의 자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OO 협동조합 이사장 C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고, 시선은 내내 바닥을 향했다. 부끄러움이 많고, 세상이 아직은 조금 두려운 청년. 그것이 내가 읽은 그의 첫 페이지였다.
그의 조심스러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정도 편안한 사이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로 옮겨야 했으며. 마음에는 우울증, 대인기피증, 그리고 공황장애라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고 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협동조합은, 그와 같은 학교 밖 청년들이 모여 운영하는 로스터리 카페였다.
나는 그들의 컨설팅과 협업을 담당하며, C 군이라는 책을 3년간 읽어 내려갈 기회를 얻었다.
그가 가진 상처의 무게를 실감한 것은 어느 외부 행사 날이었다.
커피를 파는 부스를 운영하던 중,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의 호흡이 가빠지고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그를 급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기고, 선택권을 주었다.
"지금 철수하고 집에 가도 괜찮아. 아니면, 좀 안정이 된 뒤에 다시 시작해도 돼. 선택은 C군이 하는 거야. "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만 안정이 되면... 다시 부스를 운영할게요."
그리고 그는, 그날 끝나는 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표면적으로, 3년간의 카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재정적, 경영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그 폐업 절차를 논의하던 날, 나는 진짜 '성장'을 보았다.
내 앞에 앉은 C군은 더 이상 첫날의 그 소심한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팀장님, 저는 이제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거예요. 성우가 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있어요. 그게 첫 번째 꿈이지만, 현실을 생각해서 프로그래머 과정도 고민하고 있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3년의 시간이 선물한 단단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C군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그의 근황은 나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팀장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현재, OO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성우도, 프로그래머도 아니었다. 그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C 군이라는 한 권의 책을 덮으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변화는 누군가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패와 트라우마라는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가 있을 때, 곁에서 보내주는 조용한 관심과 응원이야말로 그를 세상 밖으로 다시 걸어 나오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C군은 내게, 실패가 어떻게 가장 위대한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책'이었다.
다음 주 목요일,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연재를 구독하시면 새 글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1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67
2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68
3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69
4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95
5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96
6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101
7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99
8편 보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