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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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고된 훈련을 마친 아들이 현관문 앞에 쓰러지듯 누웠다. 초등학교 4학년, 아홉 살의 작은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엄마, 오늘은 정말 힘들었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
"실력은, 네가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늘 거야."
나의 상투적인 위로에,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아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명료했다.
"나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야. 다들 열심히 해."
나는 그 말에 순간 숨을 멈췄다. 그렇다. 꿈을 향해 달리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필사적이다. 아들은 아홉 살의 나이에, 이미 경쟁의 본질과 세상의 무게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 동네 야구단에서 시작되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이는, 이듬해 감독의 눈에 띄어 선수반에 들어갔다. 야구를 향한 아이의 열정은 뜨거웠고, 재능은 빛났다. 방과 후의 고된 훈련은, 아이에게 힘듦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중학교 2학년, 중요한 시합에서 무리한 플레이를 하던 아들의 어깨에서 '뚝'하는 소리가 났다. 한창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기에 찾아온 부상은 잔인했다. 재활의 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물었다. "그만둬도 괜찮아."
아들은 흔들림 없이 답했다."계속하고 싶어요."
그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중학 시절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야구 명문고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더 잔인한 불운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를 덮쳤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십자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의사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체대 입시의 길도 함께 막혔다.
아이의 시간은 멈췄다. 한동안 아들은 자신의 방에 갇혔다. 웃음을 잃었고, 대화는 단절되었다. 꿈의 폐허 속에서, 아이는 깊은 우울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어둠의 시간을 묵묵히 함께 버텨주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아주 천천히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복지를 전공해야겠다고,
운동만 하던 아이가 낯선 학문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해냈다. 학생회 임원이 되었고, 청소년 센터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리고 4년이 흘러,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들이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를.
자신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아이는 안다.
세상에는 야구장 밖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함께 서주는 것이, 자신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아홉 살의 아들이 툭, 하고 뱉었던 그 명료한 문장은, 이렇게 아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해답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좌절을,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큰 꿈으로 바꾸어냈다.
내 아들은, 그렇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길은 멈춤 같았지만, 사실은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켜보며,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자녀를 통해 또다시 배우는 일임을 깨닫는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성장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자 스승이다." - 카를 융 -
"육아는 부모를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업이다. 아이를 통해 우리는 인내, 희생,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배운다." - 오프라 윈프리
#야구 #부상 #좌절 #새로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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